기업가 정신 옥죄는 규제, 경기 침체 부추겨
돈 풀기보다 경제 낙관적 심리 우선 살려야
[ 김우섭 / 권서현 기자 ] “정부 규제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기업을 옥죌지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에 나서는 기업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보다는 기업가 정신을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의 고안자이자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주최한 ‘2016년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글로벌 경제와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거침없는 조언을 했다. 기조연설 및 강석훈 새누리당 국회의원(전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과 진행한 대담을 통해서다.
실러 교수는 최근 ‘심리적 공포’가 세계 경제를 침체 국면으로 내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유럽의 금융 부실 우려 등이 겹 「庸?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장기 침체’란 단어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며 “불안한 미래 때문에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고, 기업은 다시 투자를 줄이는 악순환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 미국의 ‘닷컴 거품’과 2007년까지 이어진 ‘부동산 거품’을 미리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실러 교수는 “현 경기 상황은 침체라고 단정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경기 침체가 올 것인지, 또 온다면 언제 올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워 막연한 두려움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미국의 기업 투자 등이 (오랜 침체를 벗어나) 정상 궤도에 오르는 등 긍정적인 면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러 교수는 최근 스위스와 덴마크 일본의 중앙은행 등이 잇따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금리를 낮춰 경제 주체들이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다고 해서 투자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경기침체 요인을 심리적인 부분에서 찾았다. 실러 교수는 “장기 경제전망에 대한 두려움이 기업의 투자를 짓누르고 있다”며 “부작용이 큰 유동성 확대 정책보다는 낙관적인 경제 심리를 우선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실러는 저서 야성적 충동에서 탐욕이 두려움을 압도할 때 비(非)이성적인 거품이 생긴다며 정부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기업에 대한 추가 규제가 필요하냐”는 강 의원의 질문에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규제 정책은 경기침체를 부추길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실러 교수는 중국 경제 둔화는 정부의 지나친 간섭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국영 기업 수가 지나치게 많고 부실한 기업의 연명(延命)을 돕는 대출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인위적인 정부의 개입과 통제를 피해야 기업 활동에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러 교수는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정치 사회 심리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비이성적 충동의 주창자다. 사람들이 시장의 수급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그에 따라 시장이 균형을 찾아간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은 맹신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그동안 믿어온 전통적인 시장 지표에만 의존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것은 절대로 예측하지 못할 것”이라며 “경제 주체들의 합리성과 야성적 충동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고령화 문제에 대해선 더욱 많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복지지출을 크게 늘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노동자가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권서현 인턴기자(서울대 4년)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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