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가 1960년 발표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년 7월 중순에는 55년 만에 새 소설 '파수꾼'을 전 세계 10개국에서 동시에 냈다. 미국과 영국에서 원본을 내는 것에 맞춰 한국을 비롯해 스페인, 독일, 브라질, 스웨덴, 네덜란드, 카탈로니아, 덴마크에서 번역본이 나왔고 미국에서만 초판 200만부를 찍었다. 미국을 대표한 소설가 하퍼 리가 지난 18일 자신의 고향인 미 앨라배마 주 몬로빌 자택에서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앵무새 죽이기'는 1930년대 대공황 직후 미국 앨라배마 주를 무대로 삼았다. 여섯 살 걸스카우트의 시선으로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과 빈부 격차를 그린 소설이다.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했던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작품이기도 하다. 소녀의 아버지는 누명을 쓴 흑인을 법정에서 변호하는 변호사 애티커스. 그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오랜 기간 미국에선 정의와 양심을 대변하는 영웅으로 꼽혔다. 억울한 흑인을 법정에서 변호하는 과정을 통해 인종차별을 비판한 사회소설이기도 하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반(半) 자전소설’로 불린다. 이유는 그녀가 앨라배마에서 태어났고, 부친이 변호사 출신으로 주의원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첫 소설이 거둔 성공의 부담감 때문에 후속작을 쓰지 못했다. 1960년대 후반 이후엔 언론 접촉을 멀리하고 고향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2007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을 때 언론 앞에 나타난 것이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대외활동을 자제했다.
하퍼리의 존재는 지난해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 ‘파수꾼’을 55년만에 출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신작이 아니라, ‘앵무새 죽이기’의 초고였다고.
작가가 초고를 크게 수정해 ‘앵무새 죽이기’를 냈기에 내용이 크게 달랐다. ‘앵무새 죽이기’의 20년 후를 배경으로 한 ‘파수꾼’은 등장인물은 동일하지만, 아버지의 성격이 뚜렷하게 달라 논란이 됐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흑인 인권을 보호하고자 했던 애티커스가 ‘파수꾼’에선 흑인을 멸시하는 백인 우월론자로 나왔기 때문이다. 즉, 애티커스는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억울한 흑인을 변호했을 뿐이지, 인종차별 철폐론자가 아님을 책에서 보여준다. 하퍼 리는 화제작 ‘앵무새 죽이기’와 짝을 이룬 소설 ‘파수꾼’에서 인종차별에 비판적인 작가의 시선을 날카롭게 보여줬다.
장두원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 (연세대 국어국문 2년) seigich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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