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잃고 한껏 웅크리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말마따나 디플레 사고 틀이 형성되면 기업은 투자를 늦추고 개인은 소비를 미룬다. 구매를 늦출수록 더 낮은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어서다. 이 지경이 되면 어떤 정책도 무효하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경제 규모는 쪼그라든다.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도입한 것도 디플레 우려 탓이다. 청와대가 정치권에 노동개혁법과 경제활성화법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줄 것을 거듭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구조조정은 신사업 추진 촉매
디플레는 거품과 상극이다. 경제 취약점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세계 경제 파이가 줄고 공급 과잉으로 제품 가격은 속절없이 하락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무역량은 금액 기준으로 12% 감소했다. 조선 철강 중공업 등 중후장대형 구(舊)산업일수록 고통이 크다.
중국 정부는 철강산업에서만 50만명을 감축하는 등 앞으로 3년간 굴뚝 산업에서 500만~600만명을 구조조정할 계획이다. 국내 조선 ‘빅3’에서도 조만간 빈 도크가 나올 전망이다. 수주 가뭄이 지속되면 협력업체까지 포함해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난세일수록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남보다 한 발 먼저 군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뿐 아니라 신사업을 추진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디지털 혁명 시대 새 일자리는 구산업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에서 찾아야 한다. 신산업에서 얼마나 빨리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사회구성원도 참고 견뎌야 한다.
인천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에 가보면 신산업이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항체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년 새 400명을 새로 고용했다. 2012년 출범한 바이오시밀러(항체의약품 복제약) 개발 업체 삼성바이오에피스에도 570명이 근무 중이다.
고용 활발한 송도 바이오단지
기존 사업장에서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삼성이지만 미래 수익사업에서는 고용을 늘리고 있다. 셀트리온도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인천 지역 의약품 수출은 4억9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4.8배로 급증했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역량을 키우고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송도에서 또 다른 반도체 신화를 쓸 수 있다.
문제는 신사업을 찾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줏대있는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삼성도 바이오산업을 본격화하는 데 10년 이상 공을 들였다. 두산은 새 성장동력으로 건물 주택용 연료전지사업을 찾기까지 7~8년이 걸렸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영향을 준 요소 가운데 70%가 기술혁신을 포함한 총요소생산성이었다. 미래 신사업을 찾아내 연구개발 투자를 계속해야만 우리 경제가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소비 주도의 경제회복에는 한계가 있다.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와 신사업 발굴만이 디플레 공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이익원 부국장 겸 IT과학부장·디지털전략부장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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