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간과 AI 공존, 다음 수 생각할 때

입력 2016-03-14 17:41  

"알파고·이세돌 '직관'은 계산의 산물
범용성의 뇌가 지는 건 예견된 결과
초기술사회의 미래상 곰곰 짚어봐야"

최준식 < 고려대 교수·심리학 >



이세돌 프로바둑 9단이 지난 13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네 번째 대국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엄청난 학습을 통해 인간과 같은 직관과 추론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에 대해 한 인간이 거둔 극적인 승리라는 평가가 많다. 과연 그럴까.

심리학과 뇌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흔히 직관이라고 부르는 비(非)언어적이고 무의식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추적해왔다. 인간의 뇌활동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최근에는 흔히 직감으로 표현되는 신속한 상황판단 능력이 대뇌 피질 아래에 있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 정보처리 과정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이 다음 역에서 내릴 사람을 찾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알아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하철을 타는 몇백만명이 어디서 내리는지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곧 내릴 사람이 보이는 몇 가지 사인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거나 고개를 드는 사람을 찾는 두 번째 방식을 따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직관이 아닌 추론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눈에 띄는 사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손과 발끝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파악해서 99% 정확도로 맞혀내는 것을 직관이라고 본다.

인간의 뇌 영역은 입력된 정보 처리 결과를 알아차릴 뿐 처리 과정 자체를 완벽하게 모니터링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본인은 어떻게 해서 자신이 그걸 맞혔는지 정확히 기술하지 못한다. 직관이나 직감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실제 두 과정 모두 정보처리에 기반한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 9단이 감(感)으로 ‘신의 한 수’를 두었다고 한다면 이는 이전까지 본인이 경험한 무수한 패턴에서 나온 계산의 산물이다. 단순한 느낌으로 인공지능에 패배를 안긴 것이 아니다.

알파고의 직관, 추론, 창의력 역시 인간의 직관을 초월하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다. 알파고는 고도의 패턴인식 기계다. 그 패턴에는 바둑판에 있는 흑백 돌들이 이루는 시각적 패턴뿐 아니라 여러 수에 걸쳐서 돌이 변화하는 방식까지 포함한 다차원 입력이 포함된다. 알파고는 16만건이 넘는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포함, 지금까지 사람이 처리를 고려하지 않은 변수를 활용해 승리를 거두다보니 놀랍고 창의적으로 보이는 것뿐이다. 이는 100년 전 심리학자인 파블로프와 손다이크가 시작해 발전해온 학습심리학적 이론, 1940년대 시작해 알파고의 모태가 된 딥러닝을 발전시킨 힌튼과 같은 인지심리학자와 컴퓨터 과학자가 쌓아온 노력의 산물이다.

다만 알파고의 신경망인 정책망과 가치망이 가진 복잡성과 프로그래밍 언어의 표현 한계 때문에 개발자들 역시 사람의 말을 차용해 茱墟?것에 불과하다. 만에 하나 알파고가 상대 기사의 표정이나 착점에 소요되는 시간을 또 다른 입력 패턴으로 활용했다면 고도의 심리전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바둑에서 막대한 컴퓨터와 자료로 무장한 인공지능의 승리는 이번이 아니더라도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인간의 뇌는 바둑을 두기 위해 생겨난 기관이 아니라 먹이를 찾고 자신을 보호하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무수히 많은 자연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 범용성이 강한 지능기계다. 일반 지능으로 바둑처럼 계산에 특화된 문제에서도 컴퓨터를 앞설 수 있다는 것은 이 9단과 같은 바둑천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복기하고 미래에 대한 다음 수를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최준식 < 고려대 교수·심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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