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사진)는 21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정책&지식포럼에서 “고령화·세계화라는 추세 속에서 복지국가로의 이행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충분한 재정적 대책 없이는 오히려 복지수준이 줄어들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복지사회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재원조달이 가능해야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복지재정의 현실적 규모에 대한 소고’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증세없는 복지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그는 “유권자들은 높은 복지를 요구하지만 세금의 증가에는 인색해 두 가지는 동시에 달성하기 힘들다”며 “이같은 현실적 간극 속에 복지를 이념갈등으로 몰아가면서 사회적 신뢰만 낮아지고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대안을 계속 추구하지만 그 결과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재정적 고려가 선행되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조세 현실은 납세대상자의 40% 이상이 면세자로 남아있고 종합소득세를 내는 사람도 360만명에 그치는 등 복지국가 이행 부담이 비교적 좁은 계층에게 집중된 형국”이라며 “현재의 과도한 공제 수준을 과감히 없애고 한계세율은 그다지 높이지 않으면서 평균세부담을 경제전체적으로 높이는 조세개혁 없이 복지국가 이행은 힘들다”고 말했다. 또 “세율 증가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고려하면 결국 현재 10%인 소비세 인상이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가장 큰 재정수단이 된다”며 “한국사회가 이를 감내할만한 준비가 돼있는지 자문해봐야한다”고 말했다.
노령화·세계화 등 한국 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추세가 복지국가 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분석도 내놨다. 이 교수는 ”나이든 사람이 많아져 복지제도가 확대될 것이라는 추측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오히려 세금부담을 짊어질 젊은 층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시 복지를 축소시키는 방향의 투표에 나서면서 복지수준이 필수 분야에 대한 보험 수준에 머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세계화가 가져올 조세현실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그는 국가간 자본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기업 및 자본 유치를 위해 각 국이 법인세·자본세율을 낮추며 경쟁 중”이라며 ”한국도 법인세 인상이나 부유세 도입을 통해 세수를 확충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급격한 노령화와 저출산 추세 속에서 외국인 저숙련노동자가 유입되면서 이들에 대한 복지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위투표자들은 세금부담은 늘고 혜택은 외국인근로자에게 간다고 느껴 복지제도 축소를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이같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을 순 없다”며 “복지제도의 수준을 논의하는 것은 정치적 대결구도 또는 이념적 갈등 하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재정의 문제임을 직시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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