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기업, ISD로 국가권력에 맞설 준비됐나

입력 2016-03-22 15:03  

자국 이익 지키려 넣은 ISD 조항, 시간 지나며 국가 권력에 맞서는 기업 무기돼
ISD에 위협 느낀 국가들, 제한 조항 넣으며 견제 나서
지난해 전세계 ISD 분쟁 52건으로 역대 최고…
韓 기업, ISD로 국가권력에 맞서 주주이익 지킬 준비됐나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2011년 한미 FTA 협상 당시부터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는 태생적으로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습니다. 협상 내내 국가주권을 위협하는 독소조항이라며 뭇매를 맞았지요.

한미 FTA를 반대하는 측에선 “ISD가 한국의 사법주권을 해친다”며 “해외 거대 자본이 ISD를 이용해 한국을 위기에 빠뜨릴 것”이란 우려를 쏟아냈습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와 아랍에미레이트(UAE) 국영석유투자회사(IPIC)의 네덜란드 자회사인 하노칼이 한국 정부에게 제기한 2건의 ISD가 유일합니다. 오히려 삼성엔지니어링과 안성주택산업이 각각 오만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을 제기했지요. 그 외에도 여러 기업에서 특정 국가를 상대로 ISD 제소를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SD는 투자자가 투자한 국가에서 부당한 대우나 급격한 정책변경 등으로 손해를 봤을 경우 해당국에게 제기하는 소송을 말합니다. ISD 조항은 국가 간 체결하는 투자협정(FTA 포함)에 따라 그 내용이 결정됩니다. 대부분 ISD는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중립적으로 다룹니다. 그 기준은 국제법이지요. 때문에 ISD를 마치 거대한 자본의 앞잡이 마냥 묘사하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그런 주장은 한국이 국제 금융 시장에서 어떤 신뢰를 받느냐를 신경 쓰지 말고 당장 눈앞의 국익만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같습니다. 전 세계와 무역하는 한국이 국내법이 국제법보다 우선한다고 우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ISD가 처음 만들어질 땐 각 국가들이 다른 국가와 투자협정을 맺으며 자국 기업이 상대국에서 손해를 볼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ISD를 협정문에 심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달리 ISD는 민간 기업이 거대한 국가권력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ISD가 기업들이 진출한 국가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경제적 자유를 지켜낼 방패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 지난해 ICSID에 제소된 ISD는 52건으로 역대 최고치입니다. 이 중 스페인이 15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탈리아가 3건으로 뒤를 이었죠. 스페인은 경제가 악화되면서 재생에너지 투자를 유치하던 당시 약속했던 태양광 관련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피소 당했습니다. 이탈리아도 재생 에너지 정책 변경이 피소 이유입니다.

ISD 전문 변호사인 알렉산더 야노스 미국 변호사는 “각 국 정부의 정치적 간섭을 ISD를 통해 막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기업들이 국가 권력 앞에서 눈치만 보다가 당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지요. ISD는 사적영역인 기업이 공적영역인 국가권력의 부당한 조치나 일방적 결정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됐습니다. 물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다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도 합니다.

야노스 변호사는 “ISD로 제소당할 경우 그 내용이 ICSID 홈페이지에 공개 된다”며 “국제신뢰를 중요시하는 국가 입장에선 ISD 피소 사실 자체를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ISD를 하려는 움직임만으로 해당국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이처럼 ISD가 각 국 정부에게 부담스런 존재가 되자 ISD를 제한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유럽연합(EU)은 미국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를 협상하면서 정책변경에 대해선 ISD 제소를 금지하는 조항을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분쟁 해결 또한 ISD가 아닌 양국 간 상설재판소를 만들어 양국이 임명한 법관을 그 자리에 앉히려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임명한 법관에게 재판을 받아야 조금이라도 국익을 우선해 재판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한국도 ISD를 제한하는 규정을 포함한 투자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다른 분쟁해결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ISD를 못하게 하거나(한-오만,한-이란,한-베트남,한-멕시코 BIT), ISD 제소를 하기전 일정기간 이상 국내소송을 거치도록 규정하거나(한-인도,한-페루 BIT), 국내 재판에 따른 판결이 확정되면 ISD 제소 자체를 금지하는 경우(한-터키, 한-네덜란드 BIT)등 다양한 방식의 ISD 제한 규정을 협정문에 넣었지요. 바야흐로 국가와 기업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 사업에서 과거 협력업체 수준을 뛰어넘어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璿求?‘메인 플레이어’가 됐습니다. 사업을 주도하는 입장이 된 만큼 ISD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분쟁 해결방법을 갖출 때가 됐지요. 역할이 커진 만큼 관리해야 할 위험요소(리스크)도 커졌기 때문입니다. 실제 기업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17일 법무법인 세종이 연 ‘ISD 세미나‘엔 기업 관계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습니다. 자리에 참석한 한 사내변호사는 “당장 ISD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고려할 수 있도록 공부하려고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는 아직 국내기업들이 ISD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한 ISD 전문 변호사는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서 항상 ‘을’의 입장으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계약서를 작성할 때부터 나중에 싸울 생각 자체를 못해 분쟁 대비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ISD를 비롯한 국제분쟁해결 방법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기업은 ‘을의 DNA’를 버리고 ISD란 ‘무기’를 장착할 준비가 된 것일까요.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의 이익을 지키고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기업들은 ISD를 포함해 다양한 국제분쟁해결 능력을 적극적으로 갖춰야 할 때입니다. (끝)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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