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자동차·신약 개발 등 복잡하고 어려운 연구
가상실험으로 시간·비용 절감…5년간 249종 SW 개발 지원
[ 박근태 기자 ] 의료기기 전문회사 썬텍은 부러진 뼈를 이어준 뒤 몸 안에서 서서히 녹는 생체흡수성 금속판을 개발하고 있다. 표본을 제작해 실험을 거치는 대신 컴퓨터로 모의실험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썬텍은 지난해 신상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CASAD라는 3차원 구조해석 프로그램을 이용해 최적의 금속판 모양을 찾아냈다. 원래는 연구용 소프트웨어지만 기업이 쓰는 상용 프로그램과 같은 수준의 분석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연구현장에서 개발한 SW 주목
이 소프트웨어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이공계생 교육을 목적으로 추진한 계산과학 소프트웨어 플랫폼 에디슨(EDISON)을 통해 제공됐다. 이종숙 KISTI 계산과학공학연구실장은 “국내 대학과 기업이 사들이는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비용만 한 해 800억원에 이른다”며 “국내 실험실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하면 외산 제품이 잠식한 연구용 소프트웨어 쳄揚?되찾아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사람이 직접 하기 어려운 막대한 양의 계산 결과를 보여주는 계산과학의 산물이다. 2013년 노벨화학상은 단백질 등 큰 분자의 성질을 알아내는 프로그램 참(CHARMM)을 개발한 화학자 세 명에게 돌아갔다. 이 같은 소프트웨어는 항공과 우주, 조선, 자동차와 같은 공학분야는 물론 신약 개발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다. 가상실험실에서 적은 비용으로 짧은 시간에 실험해볼 수 있어 산업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런 소프트웨어는 해외 기업이 주도했다. 국내 시장의 90% 이상을 외산이 잠식한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연구자들이 새로운 국산 소프트웨어가 나와도 익숙한 외산 제품을 사용하는 관행에 젖은 것도 문제다. 에디슨은 이런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시작됐다. 에디슨은 인터넷을 통해 슈퍼컴퓨터에 접속해 복잡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가상실험실이다. 누구나 이용 계정을 받아 슈퍼컴퓨터에 접속해 분석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다섯 개 전문센터에 참여한 국내 대학과 연구실이 개발했다. 최근 5년간 개발된 소프트웨어는 249종에 달하며 43개 대학, 3만2298명이 사용했다. 한 건에 3000만원 하는 열유체분야 분석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181억원의 대체효과를 거뒀다. 에디슨이 제공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국제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학술지에 투고된 논문도 48건에 이른다. 학생들도 복잡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할 수 있어 교육 효과도 뛰어나다.
◆인재육성 기업지원 효과 톡톡
최근에는 기업들도 에디슨 플랫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테라젠이텍스는 에디슨이 제공한 단백질 구조 분석 소프트웨어 갤럭시를 활용해 돌연변이 유전자가 암이나 다른 질병으로 바뀌는 실마리를 찾고 있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이 소프트웨어는 분석시간이 짧고 다양한 구조 분석을 쉽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준수 테라젠이텍스 차장은 “해외 상용 소프트웨어가 많지만 갤럭시는 우리 환경에 잘 맞는 성능과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광학전문회사 인사이트옵틱스는 유기소자 개발 과정에서 반도체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개발 기간을 80% 단축하기도 했다. 교원은 에디슨이 제공한 분석 소프트웨어로 공기청정기 주입구와 배출구에서 발생한 불균일한 현상의 원인을 찾아냈다. 송경희 미래부 융합기술과장은 “에디슨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 구현을 위해 소프트웨어 기술력과 융합인력 양성을 결합한 대표 사업”이라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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