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R&D 무시하고 손쉬운 M&A에만 열올려
약값 대폭 올려 성장 거듭했지만
매출 부풀린 분식회계 의혹에 주가 곤두박질…파산 위기
[ 임근호 기자 ] ‘세계 최강의 지식상인 그룹’으로 평가받는 미국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제2의 엔론’으로 불리는 밸리언트로 인해 또다시 체면을 구기고 있다. 캐나다 최대 제약사인 밸리언트는 맥킨지 출신의 마이클 피어슨 최고경영자(CEO) 지휘 아래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으나 최근 분식회계 의혹에 휘말리며 파산위기를 맞았다.
존 그래퍼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24일(현지시간) “밸리언트 곳곳에 맥킨지의 지문(指紋)이 잔뜩 남아 있다”며 “맥킨지 출신 CEO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 분식회계 때문에 2001년 파산한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밸리언트 경영진 절반이 맥킨지 출신
23년간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며 제약산업 등을 담당한 피어슨은 2008년 밸리언트 CEO로 부임한 뒤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이익률을 높였다. 그는 2014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전략은 맥킨지에서 배운 것을 잘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어슨과 로버트 로시엘로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경영진 6명 중 3명도 맥킨지 출신이다.
피어슨은 많은 돈이 들어가는 연구개발(R&D)을 경멸했다. 대박을 노리고 신약 개발에 나서는 것보다 효능이 입증된 약을 제조하는 제약사를 인수합병(M&A)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밸리언트는 공격적으로 M&A한 뒤에 약 가격을 대폭 올리는 전략을 썼다.
이 방식은 통하는 듯했다. 2008년 10달러대이던 밸리언트 주가는 작년 7월 260달러대로 약 26배 올랐다. 하지만 작년 9월 공매도 리포트 전문회사인 시트론리서치가 밸리언트의 매출 부풀리기식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최근 주가는 30달러대로 폭락했다.
◆실무경험 없이 회사 맡아
시트론리서치는 “엔론을 파국으로 몰고 간 맥킨지 출신의 제프 스킬링 전 엔론 CEO와 피어슨은 비슷한 점이 많다”며 “밸리언트는 제약업계의 엔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11년간 맥킨지 컨설턴트로 일한 스킬링은 피어슨처럼 엔론에 합류하기 전까지 실무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맥킨지 출신 특유의 논리정연함과 낙관적인 회사 발전전략이 당시 엔론 CEO인 케네스 레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엔론에 영입돼 서열 2위까지 오른 스킬링은 미국 서부의 작은 에너지기업이던 엔론을 10년 만에 미국 재계 서열 5위까지 끌어올렸다.
엔론의 신사업팀은 스킬링이 끌어온 맥킨지 컨설턴트로 채워졌다. 이들은 사업계획서를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계약 체결 후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는가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스킬링이 계약만 따면 보너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엔론의 보상 구조를 바꿔놨기 때문이다. 제대로 진행되는 사업 없이 부실만 쌓여가자 스킬링 등 엔론 경영진은 분식회계에 나섰지만 결국 들통나면서 파국을 맞았다. 스킬링은 증권사기 혐의로 25년형을 받아 복역 중이다.
◆맥킨지 출신 CEO 약 440명
맥킨지는 CEO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연매출 10억달러 이상 기업의 맥킨지 출신 CEO만 현재 세계적으로 약 440명이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맥킨지 출신은 문제해결 능력과 빠르게 전략을 수립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맥킨지 마피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속력이 강한 것도 강점이다. 맥킨지를 퇴사할 땐 ‘졸업’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맥킨지 출신은 졸업생이라 부른다. 다양한 업계에서 활동하는 맥킨지 출신은 서로를 이끌어주며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꾀하면서 회사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경우도 많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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