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한국처럼 일시에 법률시장 빗장 풀려…독일 로펌들, 외국계와 경쟁하며 도약"

입력 2016-03-29 19:01   수정 2016-03-30 15:54

독일 법률시장 개방 과정은


[ 양병훈 기자 ] 독일 법률시장 개방은 법조계 내부의 논의가 아니라 ‘외부의 환경 변화’로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독일 법률시장은 1989년 연방헌법재판소의 법률시장 규제 위헌 판결과 1995년 독일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급변했다.

독일에는 로펌이 사무소를 두 개 이상 낼 수 없도록 하는 규제가 있었다. 이 규제는 로펌을 특정 지역에 묶어놓는 결과를 낳았다. 뮌헨에 사무소를 마련한 로펌은 다른 지역에 추가로 사무소를 열 수 없기 때문에 주로 뮌헨에서 활동하는 식이었다. 이 밖에 한 로펌에 파트너변호사(로펌의 주주 격)를 20명 이상 둘 수 없도록 하는 규제도 있었다. 자연스레 독일 법률시장은 소형 로펌이나 개인변호사가 주를 이뤘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89년 이 규제에 대해 “변호사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상당수 로펌은 다른 지역 로펌과 합병하면서 덩치가 커졌다. 규제가 없어지기 전에는 변호사가 20~30명만 돼도 큰 로펌이었지만 100명을 넘는 로펌이 속속 등장했다. 규제 철폐와 시장의 확장은 영미계 로펌이 ‘독일에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주요인이 됐다. 1991년 미국계 로펌 클리어리고틀립이 외국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독일에 진출했다.

독일이 1995년 WTO에 가입한 뒤 시장 개방은 가속화됐다. 독일은 WTO 설립협정 부속서 중 하나인 ‘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S)’의 적용을 받았다. 이전에는 외국 로펌이 독일에 사무소를 열고 자국법과 국제법 자문에 응하는 것만 가능했으나 GATS에 따라 독일 변호사를 직접 고용하는 것도 허용됐다. GATS로 통신 유통 교육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독일법 자문 수요도 늘었다.

영미계 로펌은 지역별 합병을 거쳐 어느 정도 몸집을 불린 독일 토종 로펌을 다시 합병하는 방식으로 독일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로펌이 외국계에 흡수되고 일부는 인력이 빠져나가 상위권에서 밀리거나 폐업했다. ‘독일이 법률시장 개방으로 황폐화됐다’는 일부 인식이 생긴 건 이 때문이다. 독일 법률 전문지 유베(JUVE)는 시장 개방 직후인 2006년 독일에서 활동하는 로펌을 1~7등급으로 구분해 발표했는데 상위 1~3등급에 포함된 9개 로펌 중 독일 토종은 글라이스루츠 한 곳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독일 토종 로펌도 영미계와 경쟁하며 노하우를 쌓아 상위권으로 속속 올라오고 있다. 법률 전문지 체임버스앤드파트너스 등에 따르면 현재 독일 상위권 로펌 가운데 다수가 독일 토종이다.

프랑크푸르트=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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