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학생들의 미래를 설계해주는 교육 혁명

입력 2016-04-03 18:43  

최경희 < 이화여대 총장 president@ewha.ac.kr >


기하학에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다. 왕이 배우기 적합하게, 편안하게 만들어진 기하학이라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학생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재미가 없고 고생스럽더라도 단호하게 시키는 게 교육이다. 또한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학교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교육이다.

지금 우리 청년들은 세계를 직시하고 나아가야만 하는 과도기에 서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이 밀려오는 제4차 산업혁명의 전혀 새로운 사회에서 어떤 모럴(moral)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를 배워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밑바닥 인간의 괴로움도 느끼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봐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학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우리 청년을 단호하게 학교 밖으로 내보내야 할 시점이다.

최근 외국 대학은 갭이어(Gap Year)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갭이어는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해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을 말한다. 1967년 한 자선기관의 프로젝트에서 유래한 이 프로그램은 1972년 영국 ‘갭 액티비티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시작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번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1년여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갭이어를 보낸다.

미국 대학들은 이 프로그램을 제도화하고 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MIT 등 주요 사립대는 학생들이 재정적인 어려움 없이 갭이어를 보낼 수 있도록 장학금을 제공하기도 한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이화여대도 ‘도전학기제’와 ‘미래설계장학금’ 등을 운영하고 있다. 도전학기제는 학생이 자신의 꿈에 맞는 활동을 스스로 설계해 진행하면서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다. 학생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맞는 지도교수를 선정하고 학교는 프로젝트 시행을 위한 지원금을 준다. 미래설계 장학금 역시 학업과 취·창업, 인턴, 봉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이 스스로 설계한 미래 준비 계획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지금까지 고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고, 대학에 들어가면 8학기 강의를 듣고 졸업했다. 대다수가 이렇게 공부한 것은 ‘여럿이 하면 무섭지 않다’는 집단 심리의 패러다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생 개개인이 주체적 판단으로 자기 미래를 설계하는 시대다. 대학은 교육에 대한 선입견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학생들의 자기 발전을 도울 의무가 있다. 청년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해서 얻어진 지식과 가치관만이 그들의 인생을 지켜줄 수 있다.

최경희 < 이화여대 총장 president@ewh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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