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는 아기 같아…사랑해줘야 좋은 제품 나오죠"

입력 2016-04-03 18:47  

1인 창업으로 특급호텔 뚫은 나원경 영준목장 대표

114안내에 전화번호 물어 영업
'입소문' 타며 현대·롯데 등 납품
"치즈에 미친 사람으로 남겠다"



[ 이미아 기자 ] “치즈는 꼭 아기 같아요. 많이 사랑해줘야 그만큼 좋은 품질의 치즈가 나옵니다. 치즈에 대고 ‘아이고 예쁘다’ 말을 걸고, 잔잔한 음악도 틀어주죠. 목장에서 키우는 젖소에게도 마찬가지고요.”

20년째 자체 생산 원유로 모차렐라와 크림치즈, 리코타 할로미 등 수제 생치즈 10여종을 제조하며 백화점과 인터넷쇼핑몰에서 ‘미친 치즈맛’이란 별명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영준목장의 나원경 대표(49·사진)는 최근 충북 청주시 미원면 목장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체더와 파르메산 같은 경성(硬性)치즈는 서양 기술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게 사실이지만 신선함이 생명인 생치즈 부문은 승산이 있다고 봤다”며 “색소나 방부제를 넣지 않고 염도와 유지방량을 최대한 낮췄다”고 덧붙였다.

나 대표는 서울의 ‘강남 8학군’ 출신이다. 부인 역시 서울 여의도에서 줄곧 자랐다. “1994년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청주의 한 목장에서 목장장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현장에 와서야 이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았죠. 어쩌면 도시 사람이라 아무것도 몰랐기에 목장을 하겠다고 덤빌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년 동안 목장장으로 일한 뒤 1996년 영준목장을 창업했다. ‘영준’은 네 자녀 중 장남의 이름이다. ‘아들에게 주는 음식을 만드는 마음으로 일한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젖소들이 행여 스트레스를 받아 원유 품질에 지장이 생길까봐 체험목장도 운영하지 않았다. ‘컴맹’이라 자사 홍보 홈페이지 하나 제작하지 않았다. “지역 공무원과 연이 닿을 새가 없으니 지원금은 바라지도 않았고, 대기업이나 유통업계 쪽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114에 전화해 호텔과 백화점 식품유통 담당 연락처를 안내받아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치즈를 들고 찾아다녔죠.”

영준목장 치즈는 2013년 5월부터 현대백화점에 입점했고, 그해 11월부터 호텔신라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엔 스타벅스에 모차렐라를 공급하고, 11월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에 입점했다. “백화점에서 외국인 손님이 저희 치즈를 알아주는 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하루는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사람들이 와서 치즈 맛을 보더니 엄청 칭찬하면서 물건을 사갔어요. 호텔신라에선 ‘꼭 잘됐으면 좋겠다’며 사내 디자인팀에서 브랜드 로고와 병 모양을 디자인해줬습니다. 모두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영준목장의 치즈 판매 매출은 월평균 약 1억원이다. 나 대표는 치즈 생산량을 무리해서 늘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치즈엔 정해진 레시피가 없습니다. 온도와 습도 등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무리해서 확장하면 영준목장만의 개성을 지키기 힘듭니다.”

청주=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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