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할배들의 경제배틀’이다. 다름 아닌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얘기다. 두 사람은 70대다. 강 위원장이 73세(1943년생), 김 대표가 76세(1940년생)다. ‘할배들’이다. 이 두 사람이 자칫 소극(笑劇)에 그칠 뻔했던 4·13 총선에 그나마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두 사람은 닮았다. 이력부터가 그렇다. 두 사람 모두 청와대 경제수석, 장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을 갈아탄 뒤 새로운 당의 간판 역할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자신을 모셔온 당에 대해 툭하면 으름장이나 어깃장을 놓는 것도 닮은꼴이다. 이러다 보니 이들에 대해 고운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욕이라거나, 독불장군이라거나, 전에 몸담았던 당에 대한 섭섭함의 발로라는 비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모처럼 싹 튼 정책경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번 총선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퍼주기식 공약 경쟁이나 해코지식 비난전으로 일관됐던 선거판에 정책 경쟁의 싹을 틔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19대 총선은 ‘무상 경쟁’이었다. 여당과 야당이 쏟아낸 무상공약 시리즈를 지키려면 250조원 이상이 든다는 계산이 나올 정도였다. 20대 총선 초반도 비슷했다. 여야 3당이 창출하겠다고 공약한 일자리만 1000만개가 넘었다.
흐름을 바꾼 것이 두 사람이다. 강 위원장은 ‘한국판 양적 완화’를 들고나왔다.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산업은행 채권(산금채)과 주택저당채권을 사들여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자고 덜컥 제안했다. 김 대표의 반격은 즉각적이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자 강 위원장은 “(김 대표야말로)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양반”이라며 맞받아쳤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 집권 8년은 실패”라고 규정하며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강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는 일종의 포퓰리즘에 가깝다”고 깎아내렸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그 사람은 헌법도 안 읽어본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해 때아닌 ‘헌법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이 사용한 ‘그 양반’ ‘그 사람’이란 용어도 화제가 됐다.
'한국판 양적완화' 제안도 신선
물론 두 사람 간 경제배틀은 어디까지나 선거 과정일 뿐이다. 실현 가능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선언’만 있지 각론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분히 개인기 성격이 강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총선 후 당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감안하면 선거 후엔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경제활성화와 경제민주화, 성장과 분배 등 우리 경제의 핵심 쟁점에 대해 몸담고 있는 당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 점은 평가할 만하다. 한국판 양적 완화나 국회의 세종시 이전 등 고민할 만한 과제를 던진 점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비상 상황이다. 성장 수출 소비 뭐 하나 좋은 게 없다. 여야는 선거가 끝난 뒤 두 사람이 제시한 경제 정책을 구체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과서에 없다고, 관련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각자 최선의 방법을 찾아 경쟁한 뒤 내년 대선에서 선택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두 사람이 싹 틔운 정책 경쟁을 이어갈 수 있다. 바야흐로 ‘할배들의 총선’이다.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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