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어떤 걸 고를까안전자산 위주로 운용 DB형
회사 오래 다닐 젊은층 유리
근로자가 직접 굴리는 DC형
임금피크제 중장년층에 적합
IRP는 세액공제 혜택 매력
만55세 이후 수령 감안해야
[ 이태명 기자 ]
지난해 말 국내 퇴직연금 가입자가 590만명에 달했다. 적립금 규모는 126조원을 넘어섰다. 2005년 기존 퇴직금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퇴직연금 제도가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등 연구기관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퇴직연금 적립 규모가 2020년 300조원, 2030년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적립금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퇴직연금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이해도는 여전히 낮다. 퇴직연금 제도는 복잡하고 어렵다고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퇴직연금 어떤 게 있나
퇴직연금은 기존 퇴직금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기존 퇴직금은 근속연수에 퇴직 당시 월급여를 곱한 금액을 퇴직할 때 일시금으로 준다. 하지만 회계상 장부에만 존재하는 돈이다 보니 회사가 부도나거나 문을 닫으면 근로자는 퇴직금을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다는 게 문제점으로 꼽혔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2005년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퇴직금을 회사 밖 금융회사에 매년 일정액씩 적립해 근로자의 수급권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는 게 도입 취지다.
퇴직연금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확정급여(DB)형, 확정기여(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 등이다. 이들 세 퇴직연금은 운용 주체, 자금 운용 방식 등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DB형은 기존 퇴직금 제도와 비슷한 연금이다.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둘 때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 총액은 퇴직 직전 3개월 평균 월급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으로 미리 정해 놓는다. 이에 맞춰 매달 회사는 퇴직금에 해당하는 일정액을 적립해준다. DB형의 가장 큰 특징은 근로자가 아니라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한다는 데 있다. 중도 인출은 할 수 없고, 추가 납입도 안 된다.
DB형과 달리 DC형은 적립금 운용 주체가 근로자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회사가 일정 부담금을 근로자 계좌에 적립해주면 근로자가 이 돈을 예금, 주식, 펀드 등 상품에 넣어 운용하는 구조다. 회사는 근로자 개인의 연간 급여 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적립하고, 근로자가 자기 돈을 추가로 적립할 수도 있다. 근로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나중에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은 일정하지 않다. 자금 운용을 잘했다면 DB형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갈 수 있지만, 투자 손실을 봤다면 퇴직금이 줄어들 수도 있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등 일정 사유에 해당하면 중도 인출할 수 있다.
IRP는 근로자의 퇴직급 ㈇?입금해 연금 등 노후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개인 계좌다. DB 또는 DC에 가입했더라도 IRP 계좌를 따로 만든 뒤 자기 돈을 추가로 적립해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설계한 연금이다. IRP는 세 가지로 나뉜다. 근로자가 이직·퇴직 때 받은 퇴직금을 넣어뒀다가 나중에 연금 형태로 받는 퇴직 IRP, 개인이 수시로 적립할 수 있는 적립 IRP, 상시근로자 10명 미만 기업의 근로자가 가입할 수 있는 기업형 IRP 등이다. 이 가운데 기업형 IRP는 회사가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을 근로자의 IRP 계좌에 입금해주고 운용은 근로자가 책임지는 것으로 DC형과 비슷하다.
내게 맞는 퇴직연금은?
운용 방식이 다르다 보니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퇴직연금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현재까지 대세는 DB형이다. 회사가 알아서 적립금을 운용해주는 편리함과 주로 예·적금 등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하는 안정성 덕분에 가입자가 가장 많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가입자의 68%가 DB형을 선택했다. 하지만 DB형이 모두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물가상승률보다 임금상승률이 낮은 회사에선 DB형에 가입하면 실질 퇴직급여가 줄어들 수 있다. 잦은 이직 등으로 근속기간이 짧은 근로자도 퇴직급여를 적게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DB형은 임금상승률이 높은 대기업 근로자,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기간이 긴 사회초년생이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DC형은 근로자의 운용 성과에 따라 나중에 받을 수 있는 퇴직금 규모가 좌우된다. 따라서 재테크 등 투자 경험이 충분한 근로자가 가입하는 게 좋다. 또 회사가 매년 연봉의 12분의 1을 계좌에 넣어주고 이 ?근로자가 운용하기 때문에 이직이 잦은 업종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중장년 직장인도 DB형보다 DC형에 가입하는 게 낫다. DB형에 가입했을 경우 임금피크제로 월급여가 줄어들면 나중에 지급받을 수 있는 퇴직급여가 적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DC형에서 DB형으로 갈아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직장인이라면 DC형으로 갈아타는 것도 좋다”고 설명했다.
지금 같은 저금리 상황에선 DB형보다 DC형이 유리하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도 있다. 예·적금 등 원금보장형 안전자산 위주로 운용하는 DB형의 수익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DB형 가입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대신 DC형 가입자가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 등 금융사들은 DC형 포트폴리오에 사모형 주가연계신탁(ELF) 등 안정성과 수익성을 두루 갖춘 상품을 넣고 있다”며 “투자에 자신이 없더라도 이런 상품을 눈여겨보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IRP는 최근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연금이다. 특히 적립형 IRP 가입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IRP의 가장 큰 장점은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이다. 2014년까지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세액공제 한도는 400만원이었는데,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를 700만원으로 늘렸다. 연금저축 등 개인연금 세액공제 한도는 400만원으로 제한하면서 DC형과 IRP 등 퇴직연금 가입 금액을 늘리면 최대 3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이 더 주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IRP는 세액공제 혜택이 상당하지만 만 55세 이상이 돼야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반드시 고려해 적립금액을 정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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