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서 여가수는 가창력보다 얼굴, 몸매가 돼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누구나 외모지상주의를 욕하면서도 정작 비주얼 가수에 환호하는 탓이다. 그런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깬 이들이 2003년 데뷔한 4인조 빅마마였다. 빅마마는 외모와 몸매 대신 화끈한 가창력으로 보란 듯이 성공했고 일본에까지 진출했다.
한국인은 지난 한 세대 만에 엄청나게 커졌다. 20세 남성 평균키가 174㎝로 아시아 최장신이다. 여성 중에도 170㎝를 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보니 평균키를 한참 웃도는 아웃라이어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빅맨(big man)’, ‘빅사이즈(big size)’의 시대다.
하지만 빅맨들은 생활에서 불편할 때가 많다. 버스를 타면 머리부터 숙여야 한다. 특히 몸에 맞는 옷과 신발을 찾는 것도 고역이다. 예전에 가슴둘레 120㎝가 넘는 ‘XXXL’ 이상 옷이나, 290㎝ 이상 신발은 서울 이태원에나 가야 겨우 구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키가 워낙 커 빅사이즈 전문 온라인몰이 늘어난 게 다행이다.
하지만 신사복은 여전히 맞춤이 아니고선 몸에 맞는 기성복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키 190㎝, 몸무게 0.1t 이 넘는 청춘들은 미국 출장길에 생전 처음 몸에 딱 맞는 기성복을 발견해 몇 벌이나 산다고 한다. 의류업체들이 재고부담을 의식해 아주 크거나 작은 옷은 잘 안 만들기 때문이다. 유니클로 같은 외국업체가 다양한 사이즈로 국내시장에서 재미를 보는 것과 비교된다.
덩치 큰 사람은 대개 손발도 크다. 한의학에서 환자의 손가락 마디 길이로 몸의 혈을 잡는 동신촌법(同身寸法)도 그런 맥락이다. ‘박치기왕’ 김일과 겨뤘던 일본 프로레슬러 자이언트 바바는 210㎝의 거한이면서 ‘16문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의 발은 320㎜로 실제론 13문(1문=24㎜)이었다. 키 216㎝에 발 크기 380㎜인 최홍만이 진짜 16문이다.
하지만 최홍만도 미국 배우 매튜 맥그로리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영화 ‘빅 피쉬’에도 출연한 맥그로리는 키 229㎝에 발 크기가 무려 457㎜(29.5인치)였다. 별명이 ‘빅풋(Bigfoot)’일 만큼 세계 최대 ‘왕발’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금강제화의 조사 결과 지난 20년간 한국인의 발 크기가 10㎜나 커졌다고 한다. 가장 많이 팔린 구두가 1995년 250~255㎜(39%)에서 지난해 260~265㎜(40%)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270㎜ 이상 대형 사이즈 비중은 11%에서 17%로 늘었다. 여성화도 240~245㎜로 커지는 추세다. 경제성장이 한국인의 체형까지 바꾸고 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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