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지우려다 댓글까지 강제로 삭제…포털사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은 자기 모순"

입력 2016-04-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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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권리 침해" 전문가 등 우려 목소리
탈퇴한 이용자 본인 입증 어려워 실효성 논란도



[ 이호기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달 말 ‘잊힐 권리’ 제도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자 포털 등 인터넷 업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회원 정보가 남아 있지 않은 탈퇴 회원까지 본인 여부를 확인해 게시글을 지우도록 한 규정 등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가이드라인이 국내 포털에만 적용되면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잊힐 권리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 권리 등 다른 가치와 충돌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정부가 법제화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실성 떨어지는 가이드라인

인터넷업계는 방통위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잊힐 권리 행사 가능 사례 6개 모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우선 방통위는 자신의 게시물에 댓글이 달려 인터넷에서 지우기 어려운 경우에도 이를 삭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원글과 댓글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어 원글을 삭제하면 자칫 댓글 작성자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반박이다.

회원 탈퇴 또는 1년간 계정 미사용으로 회원 정보가 파기돼 이용자 본인이 직접 삭제하기 어려운데 잊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논란거리다. 포털업계에서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회원 정보가 데이터베이스(DB)에서 삭제되면 사업자 역시 기술적으로 게시물을 작성한 본인을 확인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만약 본인 입증이 불가능하다면 해당 신청인은 공식적으로 제3자가 되고 해당 게시물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사실이 인정될 경우 (굳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현행법으로 게시글을 보이지 않게 블라인드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가이드라인 자체가 자기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해외 기업과 역차별 우려도

방통위는 네이버 카카오 SK커뮤니케이션즈 등 국내 포털회사는 물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바이두 등 해외 사업자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 사무소나 직원을 두지 않은 해외 업체는 현실적으로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국내 포털에서 블라인드 처리를 하더라도 해외 포털에서는 여전히 노출이 이뤄져 검색 품질에 역차별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한 포털업체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 사전 논의 과정에서 MS 빙이나 야후 등 일부 해외 업체는 아예 배제된 것으로 안다”며 “방통위가 만약 가이드라인의 법제화를 추진한다면 이 같은 역차별을 해소할 방안을 함께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방통위 가이드라인?핵심은 자신이 작성한 글을 타인이 볼 수 없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타인이 쓴 글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지금도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에 따라 검색 배제(블라인드 처리) 및 삭제가 가능하다.

박노형 고려대 교수는 “유럽연합이 인정한 잊힐 권리는 인터넷 이용자가 과거 실수한 사건이 나중에 족쇄가 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며 “알 권리나 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와 충돌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의 법제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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