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산된 M&A 거래규모 3760억弗…2007년 이후 최고
투자·고용감소 등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
[ 뉴욕=이심기 기자 ]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세금회피 차단과 독과점 규제 등을 앞세워 기업들의 초대형 인수합병(M&A)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미 재계는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M&A 무산, 10년래 최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3년간 공들여온 보톡스 제조업체 엘러간의 인수가 무산되면서 미국 2, 3위 원유서비스 기업인 핼리버턴과 베이커휴스 간 M&A도 성사되기 어려워졌다고 7일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법무부가 핼리버턴의 베이커휴스 인수를 금지하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이날 전했다. 두 업체가 합치면 1위 슐럼버거와 맞먹게 돼 경쟁을 제한한다는 게 이유다.
앞서 화이자는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1600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엘러간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미 재무부가 외국 기업 인수 후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방식으로 세금을 피하려는 이른바 조세회 ?거래를 차단하는 규제 방안을 내놓은 지 하루 만이다. 이 방안은 해외로 이전한 본사가 미국 내 자회사에 대출 시 이자비용만큼 세금을 면제해준 기존의 혜택을 없애고, 합병회사의 미국 주주 지분율이 80%를 넘으면 미국 기업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화이자는 엘러간 인수 후 아일랜드로 본사를 옮겨 35%에 달하는 미국 법인세 부담을 12%로 낮출 계획이었으나 새 규제안이 실행되면 실익이 없다고 판단, 인수를 포기했다. M&A 계획을 취소한 사례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최근 미 정부의 반대로 M&A가 무산된 사례는 미디어회사인 컴캐스트의 타임워너 인수(452억달러), 제약사 애브비의 샤이어 인수(540억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사무기기업체 스테이플은 오피스디포 인수(63억달러)를 불허한 연방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FT는 이번 건을 포함해 올해 무산된 M&A 거래 규모가 3760억달러로 2007년 이후 가장 크다고 전했다.
○정부의 ‘매복작전’ 비판
미 재계는 정부가 잇따라 M&A에 제동을 걸면서 기업 투자와 고용 감소, 경쟁력 약화를 불러오고 있다며 ‘주식회사 미국’의 퇴보를 경고하고 나섰다. WSJ는 화이자의 인수 포기로 이어진 미 재무부의 규제안 마련을 기업사냥을 위한 ‘매복작전’에 비유했다.
이언 리드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정부의 실패한 조세시스템 탓에 미국 기업의 투자가 줄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높은 법인세율 때문에 미국 기업은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에 투자하기 어려운 반면 외국 경쟁사는 세금 부담 없이 미국에서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렌턴 손더스 엘러간 CEO도 미 재무부의 규제에 대해 “경기 도중 규칙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다른 다국적 기업도 이번 조치를 십자포화에 비유하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낸시 맥러넌 국제투자기구(OII) 대표는 “이번 조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합법적인 자금거래를 통해 설비투자를 해온 다국적 기업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어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다국적 기업은 미국 정부가 자신들을 불공정하게 취급하고 있으며 이번 조치로 미국 내 사업이 영향을 받게 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FT는 덧붙였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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