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지음 / 이재경 옮김 / 21세기북스 / 272쪽 / 1만6000원
[ 양병훈 기자 ] 2013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2만명의 인파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거리에 몰려들었다. 다섯 살 소년이 배트맨 복장을 하고 영화 속 배트맨 차에 올라 도시를 누비는 걸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미국의 한 비영리단체가 마련한 행사였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이 소년의 소원은 배트맨이 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배우가 참여해 이 꼬마 배트맨이 위기에 처한 아가씨를 구하고 악당을 체포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마지막에는 ‘진짜’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나와 소년에게 “도시를 지켜줘서 고맙다”며 선물을 줬다.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찡하게 한 이 행사는 미담거리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올바른 것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이 단체가 소원성취 행사에 쓰는 기부금은 평균 7500달러다. 말라리아로 죽을 운명인 저개발국 어린이 한 명의 목숨을 구하는 데 드는 돈은 2500달러다.
‘미국 어린이 한 명의 하루 추억인가, 저개발국 어린이 세 명의 생명인가.’ 윤리학자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석좌교수가 새 책 《효율적 이타주의자》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저자는 “감성에 이끌려 기부하기보다 이성에 의존해 최선의 결과를 낳는 기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싱어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2000년대 성인이 된 사람들)에서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기부하기 위해 돈을 번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앞으로 10~20년 정도 지나면 이런 ‘기부를 위한 벌이’에 사람들이 익숙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그렇다고 여가 활동에 돈을 쓸 때마다 ‘이 돈이면 아프리카 어린이 몇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삶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오래 지속할 수 있다”며 “개인 생활에 돈을 쓰기 전에 기부할 돈을 미리 떼놓으면 이런 고민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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