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당분간 고공행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당 엔화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10엔선을 밑도는 만큼 투자자의 손절 욕구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로존 탈퇴·Brexit) 등 추가 강세를 견인할 변수들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엔·달러 환율, 연말 100엔대 진입할 수도"
김문일 유진투자선물 연구원은 22일 엔·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는 105엔대까지 하락하고 장기적으로는 100엔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스터 엔'으로 유명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도 같은 전망을 내놨다. 엔화 강세는 점차 심화될 것이고 엔·달러 환율은 몇 달 안에 달러당 105엔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 연말에는 100엔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는 "엔·달러 환율이 105엔까지 떨어지면 일본 재무성이 구두개입에 나설 것"이라며 "100엔 수준이 되면 엔화를 매도해 엔화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브렉시트 문제가 엔화 움직임 ?또 하나의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광래 삼성선물 연구원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된다면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 강화와 함께 엔화 강세를 중장기적으로 지속시킬 것"이라고 했다.
현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최대의 조세 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 문제로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유로존의 잔류 입장 지지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오는 6월 국민투표를 통해 탈퇴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은행도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엔화의 추가 강세를 이끌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0일 일본은행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브렉시트가 안전자산 매수세를 촉발해 엔화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이는 일본의 경기에 악영향을 준다고 보도했다.
일본은행은 브렉시트가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 수요에 타격을 주고 안전통화로 알려진 엔화 매수를 촉발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구마모토 지진 발생…일본은행 추가 양적완화 발표 가능성"
최근 일본 구마모토에서 발생한 지진도 엔화에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되겠지만 고려해야 할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임동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구마모토 지진으로 일본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경우 보험사들은 해외 투자금을 회수하게 된다"며 "이 경우 엔화 강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보험사들은 지진 피해에 따른 보상금을 마련해야 하므로 엔화 수요를 늘리고, 이는 엔화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일본에서 두 차례 대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엔화는 강세를 나타냈다.
지난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엔·달러 환율은 1월 99.7엔에서 6월 84.5엔으로 15.2% 하락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3월 81.6엔에서 거래되던 엔·달러 환율이 9월 76.8엔으로 5.8% 미끄러졌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 팀장은 "당시 지진 발생 자체보다는 멕시코 위기, 유로존 재정위기에 따른 영향이 더 크긴 했다"며 "이번 구마모토 지진 이후에는 단기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되며 엔화는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엔화가 장기적인 측면에선 다시 약세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일본은행이 오는 27~28일 열리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공격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해 엔화 약세를 야기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일본은행이 통화완화 규모를 두 배로 늘릴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를 마이너스(-) 영역으로 더 떨어뜨리기보다는 자산매입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연구원도 "지진으로 인해 일본 경제의 타격이 점차 커진다면 일본 정부가 엔화 약세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며 "일본은 위기가 발생할 경우 당국의 개입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재 팀장도 "구마모토 지진이 글로벌 경제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일본 금융당국의 통화완화정책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엔화 약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국내 증시도 엔화 움직임 촉각…투자전략 어떻게
국내 증시도 엔화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엔화 강세가 나타난 이후 외국인이 순매수에 나서는 등 수급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가 급격한 강세를 보인 지난 2월부터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순매수하는 상황"이라며 "반면 일본 시장에서는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엔화 강세로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부각되고 있는 점이 긍정적"이라며 "현재 원·엔 환율의 경우 산업구조가 유사한 일본과의 경쟁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계와 에너지, 철강 등 경기 민감주에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엔화 강세로 반사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데다 기대수익률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택 SK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업종에 대한 단기적인 모멘텀(상승 동력)이 기대된다"며 "기아차와 현대위아, 만도, 서연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엔화 강세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중국 및 세계수요 변화 등 보다 근원적인 경기요인에 연동되고 있다"며 "세계 경기가 취약한 상태에서 원·엔 환율 변동폭도 크지 않아 엔화 강세가 국내 증시를 돕는 힘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엔화 강세는 아베노믹스의 한계와 달러화 약세 등으로 나타난 일시적인 반등일 뿐"이라고 내다봤다.
채선희 / 박상재 /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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