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여신 '눈덩이' 국책은행] 벌려놓은 구조조정 수습 급한데…5개 취약업종 모두 떠안은 산은

입력 2016-04-24 18:34  

국책은행 주도 구조조정 '진퇴양난' (1)

부실여신 지난해 7조…1년새 두 배 이상 늘어나
자본확충 없으면 BIS 비율 10% 아래로 떨어질 수도
대우조선 3조 손실 몰라 자회사 관리능력도 '도마'



[ 김일규 기자 ]
대우조선해양, 한진, STX조선해양, 한진중공업, 현대…. 주력 계열사가 스스로 회생할 힘이 없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받고 있거나 이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집단들이다. 이들 기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모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 채권은행으로서 구조조정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경영에 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산업은행이 조선·해양 부문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대부분 떠맡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나빠지는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 의지와 능력 면에서도 의구심을 사고 있다.

취약 업종 혼자 떠안은 산업은행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올해 금융권 빚이 많은 39개 기업집단의 30.7%인 12개 기업塤騈?주채권은행을 맡았다. 거의 대부분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건설 등 5개 취약 업종에 속한 기업들이다.

이 가운데 절반인 6곳은 본사 또는 계열사가 자율협약 중이거나 자율협약 신청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13개 기업집단의 주채권은행을 맡고 있지만 이들 모두 정상 기업이라는 점과 대비된다.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이 산업은행에 몰려 있다는 얘기다. 주채권은행은 일반적으로 대출을 포함한 여신이 많은 은행이 맡는다.

산업은행이 취약 업종 기업들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것은 그 역할 때문이다. 산업은행법 1조는 산업은행 설립 목적으로 ‘산업의 개발·육성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문제는 산업은행을 통해 정부 주도로 개발 육성한 조선,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이 경기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둔화하면서 이들 산업은 동시에 어려워졌다. 부실기업이 대거 산업은행 손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들이 경기 민감 업종 대상의 여신을 줄이고 가계 대출을 늘림에 따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부담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금융권의 대출, 보증 등 위험 노출액은 약 21조7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약 76.4%인 16조6000억원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몫이다.

구조조정 실탄도, 능력도 부족

지난해 이후 한꺼번에 여러 부실기업이 산업은행 관리를 받음에 따라 산업은행의 건전성에는 이미 빨간 불이 들어왔다. 산업은행의 3개월 이상 연체 채권(고정이하 여신)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7조3269억원으로 2014년 말 3조781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체 여신에서 고정이하 여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5.68%로 전체 은행 평균(1.71%)의 세 배 이상이다.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4% 수준으로 금융감독원의 지도비율(10%)보다는 높지만 추가적인 자본 확충 없이 부실기업들을 계속 떠안을 경우 지도비율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이끌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산업은행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산업은행은 자회사인 대우조선이 지난해 2분기(7~9월) 갑작스레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것에 대해 지난해 국정감사 등에서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전혀 몰랐다’고 답해 논란을 일으켰다. 자회사 관리 부실에 책임을 지는 임직원도 없었다.

산업은행은 또 퇴직 임직원들을 대출 기업이나 투자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기업에 줄줄이 재취업시켜 구조조정을 늦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산업은행은 일반 은행보다 기업 구조조정을 평균 2년6개월 지체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대한 출자전환을 통해 두 회사를 자회사로 둘 경우 최대한 서둘러 경쟁력을 키운 뒤 매각해야 한다”며 “기업 경영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산업은행이 오랜 기간 해운사를 자회사로 두면 제2의 대우조선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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