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없는 자율협약
금융위는 원칙만 제시하고 채권단이 주도하게 해야
[ 김일규 기자 ] 지난 25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신청서를 든 한진해운 재무담당 임원이 도착했다는 얘기가 퍼졌다. 산업은행의 구조조정업무 담당자는 금융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는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후 4시께 산업은행은 “자구계획을 보완해서 다시 오라”고 한진해운에 통보했다. 자구계획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정부가 2004년 자율협약 제도를 도입한 이래 채권단이 협약 신청서를 보완하라고 통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율협약 신청 자체를 반려한 게 아니라 계획안을 보완해 다시 제출하라는 것으로 보이지만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가 산업은행 쪽에 시쳇말로 ‘빠따(압박)를 한 번 더 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올해 초부터 금융권에선 금융위가 한진그룹을 곱지 않게 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산업은행을 통해 한진그룹에 한진해운 재무개선을 위해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받으라고 했지만, 한진그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은 금융위의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에 “2014년 한진해운을 그룹에 편입한 뒤 자구계획과 자금 지원을 통해 2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투입했는데, 무조건 경영권을 포기하고 채권단 공동관리를 신청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버틴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은 지난 22일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지난달 말 직접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만나 설득까지 했지만, 한진그룹은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끌다 22일에서야 자율협약 신청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그러자 금융위 내에선 ‘한진그룹이 손을 뗄 테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25일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까지 금융위 쪽에서 “자구계획이 충분하지 않으면 곧바로 반려한다”는 메시지가 계속 나왔다.
자율협약은 법적 강제력 없이 채권단과 채무자 사이에서만 배타적으로 유효한 협약일 뿐이다. 용어 그대로 채권단 자율로 협약을 맺고 구조조정을 하는 절차다. 채권단 관계자는 “금융위의 답답한 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자율협약도 자율적으로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금융위의 ‘보이지 않는 압력’ 행사로 한진해운과 산업은행은 26일에도 자구계획을 새로 작성하는 작업을 벌였다. 한진해운은 이번주 안에 자율협약 신청서를 다시 제출할 계획이다. 채권단 관계 渼?“한진해운 구조조정이 처음부터 삐거덕대면서 시장에서 ‘한진해운이 살아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만 커졌다”며 “구조조정을 서두르겠다면서 금융위가 과도하게 기업 군기 잡기를 한다면 시장의 혼란만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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