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 오독해 더 황당한 개입
진정 민생경제 살리겠다면
경제 활성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 장 마련해야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http://img.hankyung.com/photo/201604/2016042788921_02.6930186.1.jpg)
레이건은 선거에서 승리했고, 재담(才談)도 현실로 입증했다. 8년 재임 기간 동안 2000만개 가까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2% 안팎이던 경제성장률도 연평균 4%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감세(減稅)와 규제 완화로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공급중심 경제정책(supply-side economics)’이 먹힌 덕분이었다.
재정 투입 등 수요를 부추겨 일자리를 늘리려다가 실패한 카터 행정부와 대조를 이뤘다. 그의 이름을 딴 ‘레이거노믹스’는 시장 개입이 아닌 ‘조장(助長)’이 왜 옳은 처방인지를 설명해주는 고전적인 사례가 됐다. 최근 중국 정부에서 도입을 추진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에서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도입하겠다니, 국제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요즘 한국의 경제 상황이 36년 전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4%로 2분기 연속 0%대로 추락했다. 설비투자는 전기 대비 5.9%나 급감했다. 미래의 성장을 가늠하게 해주는 대표적 지표인 설비투자의 마이너스 추락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청년실업률이 1997년 외환위기 수준인 12.5%로까지 치솟아 있는 터다.
이런 경제난국을 외부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과 비교해 한국의 투자감소율이 단연 1위다. ‘경제민주화’에 맞춰 개정된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이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꺾고 있다. 척박한 기업생태계에서 ‘성공신화’를 써낸 카카오가 총자산 5조원이 넘게 성장했다는 이유로 대기업 규제를 받게 돼 투자 발목을 잡힌 게 단적인 예다.
4·13 총선 결과는 이런 지경에까지 경제를 몰고 온 1차 책임을 정부와 여당에 물었다. 그렇다고 야당들은 그런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여야 간 토론과 합의를 요구하는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야당이 면죄부를 받을 길은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활성화법안들을 이렇다 할 토론의 기회조차 없이 봉쇄해 온 게 야당이다.
그런 야당의 원내대표가 선거 결과에 대해 내놓은 해석이 불안하다.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경제활성화에 대해 국민들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민의 뜻을 바탕으로 정부·여당발(發) 경제활성화법을 모조리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
그러면서 ‘민생경제’를 살릴 대표적인 응급요법으로 ┰쳬?게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도입이다.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비율을 정원의 3%에서 5%로 높이고, 민간 대기업도 정원의 3%에 해당하는 청년을 의무 고용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무리한 규제가 빚은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를 더 황당한 개입으로 풀겠다면서 ‘국민의 뜻’을 갖다 붙여선 안 된다. 기업들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는 고용 의무화는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 일자리 기반 자체를 날려 버릴 게 뻔하다.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게 국민의 뜻’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경제활성화 대안들에 대해 진지한 논의의 장(場)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다. 노동개혁 4법 가운데 파견근로자법은 “비정규직을 늘릴 뿐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는 게 야당의 반대 논거다. 반대로 “파견 규제만 완화해도 9만여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중소기업 인력 부족의 60%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서비스산업 발전법이 시행되면 2030년까지 서비스분야 일자리가 최대 69만개 생길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야당은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보건 및 의료분야 지원조항을 제외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어느 당에도 과반을 허락하지 않은 총선 결과는 3당이 제대로 된 숙의(熟議)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옳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진정한 정치’를 복원하라는 게 총선 민심이지 않을까.
이학영 기획조정실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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