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저녁 무렵에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핀 서대문 돌담길을 걷노라면 꽃과 나비가 부산해지는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꽃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을 기점으로 봄의 패턴을 그리기 시작한다. 낮이 길어질 때 피는 장일식물(長日植物)에서 밤이 길어질 때 피는 단일식물(單一植物)로 이어지는 대장정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춘삼월에 피는 동백과 매화를 필두로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라일락이 그 뒤를 잇고 가을을 알리는 길가의 코스모스와 이름 모를 들국화도 정해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자연의 질서와 반복되는 익숙함은 능률을 떨어뜨리는 관행과는 다른 개념일 것이다. 가정 경제나 기업 경영이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관행이 지닌 비효율을 찾아낼 때 변화관리를 위한 새로운 패턴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으로 축적된 사고의 관성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패턴은 익숙함을 낳고 익숙함은 편안함으로 다가오지만, 변화는 그 편안함을 순식간에 불안함으로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이 작지만 큰 변화를 令되構킬?혁신의 원천으로 진화하는 사례를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일례로 필자가 금융지주 수장으로 부임한 뒤 결재판에 갇힌 보고 문화를 바꾼 점을 들 수 있다. 경영 현장을 관리할 전문가 집단이 대면보고를 위해 시간을 허비하면서 ‘생산성 하락’과 ‘효율성 저하’를 결재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익숙한 비효율의 경로가 관행으로 남아 경영 혁신을 가로막는 현상은 찰스 틸리 교수가 주장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최근에는 사내전화, 이메일, 전자문자, 휴대폰 등 결재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의사결정 피드백이 신속하게 이뤄질 뿐만 아니라 조직의 활력도 배가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올봄에는 한줌의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귀차니즘’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싹틀 수 있는 패턴의 변화를 그려봄 직하다. 작은 시도가 필자나 독자 모두에게 삶의 다채로움을 디자인하는 혁신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용환 < NH농협금융지주 회장 yong1148@nonghyup.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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