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율전쟁 최대 현안 봉착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NATO(No Action Talk Only).’ 지난 2주간 세계인의 이목 속에 열린 중앙은행 회의에 참가한 통화정책 결정자들을 빗댄 말이다. 말은 요란했지만 행동은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특히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그랬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그 답은 미국 경제에 있다.
미국 경기 둔화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2분기 이후 매분기 성장률이 발표될 때마다 반토막 나고 있다. 특히 올해 1분기 성장률은 0.5%로 지난해 4분기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2015년 2분기 3.9%→3분기 2.0%→4분기 1.4%→2016년 1분기 0.5%).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기 판단 기조인 ‘완만한 회복세’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민간소비, 설비투자, 정부 지출 등 총수요 항목별 기여도를 보면 수출이 부진한 점이 눈에 띈다. 세계 경기가 부진한 것에 원인이 있지만 일본 유럽 등 교역상대국의 자국통화 약세정책에 따른 반사적인 달러 강세 피해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2년 후 미국 경제 성장률이 무려 0.75%포인트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Fed, 재무부,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 등 수출 관련 모든 미 정책부서가 반사적인 달러 강세 피해를 우려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내 환율 주무부서인 재무부가 발 벗고 나섰다. 올해 2월 이후 제이컵 루 재무장관은 더 이상 일본 유럽 등의 금융완화를 통한 자국통화 약세책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올해 처음 BHC(베넷-해치-카퍼)법과 연계해 발표한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한국 중국 대만과 함께 일본 독일을 이례적으로 환율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을 환율감시 심층대상국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외환시장 개입 의혹 등을 제기해 언제든(이르면 올해 하반기 보고서에) 한 단계 높일 가능성을 열어놨다.
세계 경제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미국의 이런 요구에 일본 유럽 등이 추가 금융완화를 통한 자국통화 약세책으로 맞대응한다면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국면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 경제에 글로벌 환율전쟁까지 불어닥치면 ‘대침체기’에 빠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올해 4월 ECB와 일본은행 회의에서 드라기와 구로다 총재는 ‘NATO’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아무런 추가 금융완화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외형상으로는 야심차게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제도 효과가 나오기까지 지켜보겠다는 이유를 뻤셀患? 하지만 미국에 맞대응하다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숨은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추가 금융완화로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면 일본 경제가 가장 우려된다. 지난 1월말 마이너스 금리제도 도입 이후 엔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보다 앞서 도입한 유럽은 아직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6월에는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영국의 국민투표도 예정돼 있다.
교역상대국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반격이 지속된다면 한국도 피해갈 수 없다. 올해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BHC법의 세 가지 환율조작국 지정요건(국내총생산 대비 3% 이상 경상수지흑자국, 매년 200억달러 이상 대미(對美) 무역흑자국, 외환시장 개입비중 GDP 대비 2% 이상) 중 두 가지가 해당되기 때문이다.
세 가지 기준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부터 줄여나가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 감소 속에 수입이 더 감소하는 ‘불황형 흑자’일수록 그렇다.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등으로 기업과 금융회사의 글로벌 투자를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있다. 포트폴리오 성격이 강한 외자 유입은 ‘영구적 시장개입(PSI)’을 통해 밖으로 퍼내야 한다.
경기부양책으로 추가 금리 인하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주체가 금리수준 부담보다 미래 불확실성을 높게 느끼는 통화정책 여건에서는 금리 인하에 따른 경기부양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부문에 자금을 집중 지원하는 ‘한국형 양적 완화’도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조항에 위배돼 통상마찰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달러 투자자는 그 어느 때보다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 추가 원화 약세를 노리다간 국가 차원에서 환율조작국에 걸려 엄청난 피해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에 걸릴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도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낮아져 ‘슈퍼 달러’ 시대가 올 가능성은 더 멀어지고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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