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아직 망하지 않은 것은 이 회사가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전형적 수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고용, 지역경제…. 이 모든 것이 허약한 자생력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왔다.
정부의 첫 지원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성 적자와 극심한 노사 분규로 폐업 직전의 위기에 몰렸던 시기다. 당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기존 대출금 2500억원의 만기를 유예하고 1500억원의 신규 대출을 제공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4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발표한 뒤 옥포에서 장기 상주를 시작했다. 양복 대신 작업복, 호텔방 대신 현장 숙소를 선택한 김 회장의 분투는 1990년대 대우조선의 정상화와 맞물려 두고두고 회자됐다.
하지만 1994년 대우중공업에 합병된 대우조선이 김 회장의 ‘세계경영’을 떠받치는 불법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99년 대우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직후 대우중공업이 2조1000억여원의 분식회계를 자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자동차와 무역 부문의 부실을 은폐하는 데 투입된 것이다.
두 번째 지원은 2000년에 이뤄졌다. 산업은행은 대우중공업에서 분리된 대우조선에 1조7000억여원의 출자전환을 단행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30대 그룹의 절반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미래 경제 재건에 필요한 공장과 설비를 사장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4조2000억원에 달하는 산업·수출입은행의 지원 방안 발표는 최소한의 공감대도 없는 것이었다. 수년간 5조원이 넘는 누적 손실을 감춘 채 주주와 채권단을 속여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제 우리 경제의 화약고로 등장했다. 현재 이 회사에 대한 금융권의 위험 노출액은 20조원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약 9조원이 수출입은행, 4조원이 산업은행 몫이다. 양대 국책은행이 단일 기업, 그것도 국영회사의 금융리스크 65%를 떠안은 꼴이다. 모든 업종과 기업에 골고루 배분돼야 할 정책금융은 이렇게 농락을 당했다. 중앙정부가 금융을 틀어쥐고 있는 중국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한다. 대마불사는 이제 대우조선해양이 아니라 국책은행의 방어 논리로 뒤틀리고 있다.
경쟁사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조선 불황에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기업들이다. 현대중공업만 해도 10조원 이상의 자산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런 와중에 대우조선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지원은 불공정 경쟁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부는 “조선업계에 대한 인위적인 산업재편은 없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업계 자율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채권단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발을 빼는 모습이다. 하지만 애초에 시장 원리는 정부가 훼손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을 지배하고 지원하면서 ‘업계 자율’을 운운할 자격도 없다.
정부는 누가 뭐라 해도 ‘조선 빅3’ 재편에 중요한 당사자다. 이제라도 공정한 관리자 내지는 심판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국책은행의 신용공여 시스템을 망가뜨린 데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공적자금 투입을 감내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예의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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