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의 '의리' 외치고 있을 때 재빨리 비집고 들어오는 중국 기업

입력 2016-05-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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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제재 풀렸다=울타리 사라졌다
자동차·가전 한국 제품 인기 있지만 저가 중국 스마트폰 쓰는 20대 급증

테헤란=김순신 산업부 기자



[ 김순신 기자 ] 이란의 수도 테헤란 거리를 걷다 보면 두 대 걸러 한 대꼴로 똑같은 모양의 차가 지나간다.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인기를 끌던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다. 이란 사람들의 한국 자동차 사랑은 각별하다. 이란 국영 자동차 회사인 사이파가 1993년 기아차 프라이드 생산라인을 인수해 지금도 ‘사바’라는 이름으로 생산하고 있고, 수입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자동차의 점유율은 80%에 달한다.

한국 제품 사랑은 가전제품에서도 나타났다. 테헤란 서부에 있는 쇼핑몰 하이퍼마켓에선 매달 최고급 LG전자 TV가 50대씩 팔려 나간다. 한 달에 두 대 남짓 팔린다는 일본 소니 TV를 압도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이란 관료들은 이란 사람들이 한국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경제제재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제제재로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기업들이 철수한 자리를 한국 기업들이 차지했다는 설명이다. 이란 관료들은 제재가 풀리면서 기존에 이란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치??경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의 관계는 관계이고 이제 새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테헤란 거리에서 만난 많은 대학생은 중국 화웨이가 생산한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기능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가격이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절반에 불과해 학생들은 중국제 휴대폰을 산다고 한다.

자동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가 본격적인 경제제재가 시작된 2011년 이후 현지 조립생산을 멈춘 사이 체리자동차를 필두로 한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저가 모델을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20%까지 올려놨다. 현지 업체가 독일 폭스바겐과 손잡고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난 1월 경제제재가 풀린 뒤로 한국에선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원유 매장량 세계 4위를 자랑하는 이란이 경제 재건에 나서면서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에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8000만 인구의 중동지역 맹주를 옥죄던 빗장은 풀렸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기업들이 뛰놀던 운동장의 울타리도 사라졌다. 그 틈을 중국 기업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이란 시장을 잡기 위한 진짜 경쟁은 이제 막이 올랐다.

테헤란=김순신 산업부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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