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 재단 '파트너'로 선정된 엑세스바이오 최영호 대표 "세계 1위 진단시약으로 말라리아 퇴치해야죠"

입력 2016-05-04 17:51  

빌게이츠재단, 800만달러 투자
최 대표, 28년간 진단시약 개발
"한국 소셜임팩트투자 확산돼야"



[ 서머셋=이심기 기자 ] “한국에서도 공익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소셜임팩트 투자가 확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하 빌게이츠재단)으로부터 세계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파트너로 선정된 최영호 엑세스바이오 대표(사진)는 “한국도 소셜임팩트 투자의 불모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공공의 목표를 실현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구조를 갖춘 전문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엑세스바이오는 지난 3월 말 빌게이츠 재단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글로벌헬스투자펀드(GHIF)로부터 800만달러(약 92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말라리아 진단시약 분야 1위 기업의 기술력을 평가받은 것이다. 매년 2억500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이 중 100만명이 사망하고 있다.

하지만 엑세스바이오가 최종 투자를 받기까지는 인터뷰 이후 1년이 걸렸다. 회사 기밀에 해당하는 핵심 기술에 대한 조사와 국가별·지역별 매출 현황, 연구개발 인력과 투자 현황, 생산시설 실사까지 받았다.

빌게이츠재단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제3세계 질병 퇴치를 위한 프로젝트를 좌지우지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철저한 사업 평가로 이름이 높다. 사업 성과 회사 분석에 JP모간이 참여하고, 실제 지분 투자도 한다. 그는 “재단에 보낸 자료만 열 상자가 넘는다”며 “무상지원이 아닌 투자를 받기 때문에 상장심사보다 더 깐깐한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엑세스바이오에 대한 투자도 800만달러어치의 전환사채를 매입하는 형식이었다. 지분의 약 4.5%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 대표는 “재단과의 인터뷰에서도 경영자의 자질과 경영철학을 집중적으로 확인한다”며 “공익적 투자인 만큼 앞으로 개발 제품에 대해 폭리를 취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고 말했다. 투자금은 말라리아 진단키트의 개발과 생산 확대에 사용될 예정이다.

빌게이츠재단이 투자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최 대표가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의 핵심진단시약인 G6PD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2008년 현지 클리닉의 초청으로 태국을 방문한 그는 열대와 사막지역에서 유행하는 희귀병인 G6PD 효소결핍증 환자에게 말라리아 치료약을 처방했을 때 악성빈혈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G6PD 보균환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5%인 3억5000명에 달하고 대부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의 빈곤국이 차지하고 있다. 그는 “말라리아 치료는 대부분 밀림 등 오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G6PD 감염 여부도 현장에서 간단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종 제품이 나윤瘦沮測?4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병에 대한 연구 자료는 물론 감염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기준 자체도 없었다. 최 대표는 “사실상 신약을 개발한 것과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2012년 진단시약이 나오고 효과가 입증되자 WHO는 말라리아 치료 프로그램에 G6PD를 포함했다. 지난달에는 국경없는의사회에도 공급을 시작했다.

빌게이츠재단은 글로벌 제약사조차 관심을 두지 않던 G6PD 진단시약 개발에 이름 없는 한국의 바이오 회사가 끈기 있게 매달린 점을 눈여겨본 것이다. 최 대표는 1987년 CJ종합연구소 연구원으로 시작해 28년간 진단시약 개발에만 매달렸다. CJ가 1990년 의약사업을 포기하자 1990년 미국의 한 바이오 회사에 입사해 12년간 근무한 뒤 2002년 미국 뉴저지주에 회사를 설립했다. 2013년 5월에는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 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서머셋=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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