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해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아등바등 바삐 사느라고 늙는 줄 몰랐다.”
올해 등단 41주년을 맞은 원로 소설가 현기영 씨(75·사진)가 새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다산책방)를 냈다. 현씨가 산문집을 낸 건 《젊은 대지를 위하여》 이후 14년 만이다. 제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4·3사건’을 겪은 현씨는 이 비극적 사건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주력해왔다. 대표작 《순이삼촌》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 그랬다.
이번 책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역사와 비극을 논하는 노(老) 소설가’에서 ‘늙음을 아쉬워하는 자연인’으로 돌아갔다고 할까. 저자는 나이 들면서 느낀 상실감을 차분하면서도 절절한 목소리로 풀어낸다. “이빨이 하나 흔들리다가 빠질 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두 개가 빠지자 그제야 아하, 내가 늙었구나! 하는 괴로운 탄식이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중략) 특히 정년을 맞아 일에서 쫓겨났을 때, 노년은 더욱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늙음을 아쉬워하는 데서 글을 끝맺지는 않는다. 도시 밖으로 나가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얻은 깨달음을 들려준다. 그가 보기에 노년은 “갑자기 놀랍게, 두렵게 마감되는 게 아니라 저 금빛의 풀밭과 단풍 든 나무들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이다. “노경(老境)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적지 않은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라며 “포기하는 대신 얻는 것은 자유”라고 설명한다.
나이 들어 부드러워진 소설가의 심경 변화도 엿볼 수 있다. “4·3사건을 말하지 않고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나는 자신에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렀다. (중략) 이제는 4·3의 글쓰기도 조금은 너그러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는 “글 쓰는 자는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독자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각성이 생겼다”며 글쓰기에 대한 소신에 변화가 생겼음을 고백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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