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젊은 작가가 그린 우리의 쓸쓸하고 아픈 삶

입력 2016-05-06 20:41   수정 2016-05-09 09:34

(20)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을 폭넓게 공부하려면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살펴봐야 한다. 그중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다. 함께 시대의 감성을 탐험하며 세상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는 관문은 다양하다. 신문과 문예잡지에서 개최하는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해 당선되면 작가로 데뷔한다. 뜻이 있다면 준비를 단단히 해 문을 두드려 보라. 소설을 대중과 친밀하게 만든 최인호 선생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매년 여러 관문을 통해 수십 명의 작가가 쏟아진다. 기존 작가와 새로운 작가가 발표한 작품 가운데 우수한 소설을 선별해 매년 각종 문학상을 수여한다. 그 가운데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내 작가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한 해 동안 발표한 중편소설과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7편을 가려내 대상 1편, 수상작 6편을 선정한다. 2010년에 제정돼 김중혁, 김애? 손보미, 김종옥, 황정은, 정지돈 작가가 대상을 받았고 2016년 7회 수상자는 김금희 작가다. 모든 작가의 소망은 동시대 독자에게 사랑받고 후세에까지 작품이 길이 남는 것이다. 유명 작가 중에는 세상을 떠난 뒤에 비로소 빛을 본 이들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살아생전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 않았다. 1924년 41세에 생을 마친 카프카가 그해에 출간한 작품이 다름 아닌 《배고픈 예술가》다.



좌천당한 남자가 16년 만에 만난 옛 애인

특별한 개성을 지닌 신예들을 발굴해 격려하는 젊은작가상은 막 출발한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7회에 대상을 수상한 김금희 작가의 작품 《너무 한낮의 연애》는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직원으로 좌천돼 지상에서 지하로 자리를 옮긴 중년 남자 필용의 얘기다. 다른 직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기 껄끄러워 퀸의 ‘구해줘’라는 노래를 들으며 혼자 종로의 맥도날드로 가는 필용. 16년 전 영어학원에 다닐 때 자주 사먹었던 피시버거를 시키지만 종업원은 “그런 메뉴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고 아예 사라져버린 피시버거를 생각하며 되돌아오는 필용의 마음이 돼보라.

종종 맥도날드에 가서 점심을 먹던 필용은 어느 날 맞은편 건물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16년 전 똑같은 제목의 대본을 쓰던 양희, 그녀가 그 연극을 만들었을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학원에 같이 다니면서 함께 햄버거를 먹었던 양희, 느닷없이 사랑한다고 말해 필용의 마음을 흔들었다?갑자기 사랑이 없어졌다는 말로 혼란에 빠뜨렸던 그녀.

필용은 그녀를 만나보기로 결심하고 공연장에 간다. 관객과 함께하는 연극에서 눈만 내놓은 배우 양희와 머플러로 얼굴을 가린 필용이 마주 선다. 필용은 결국 먼저 고개를 떨꿨고, 무대를 내려온다. 16년 전 헤어지던 날처럼 두 팔을 흔들어주는 양희와 마음으로 작별하고 회사로 걸어가면서 필용은 눈물을 흘린다. 너무 환해서 감당할 수 없는 대낮에.

6회에 《조중균의 세계》라는 작품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금희 작가는 중년 남성의 피폐한 삶을 그리는 데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교정직으로 밀려나 회사 사람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고집스럽고 답답한 조중균 씨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37세의 여성작가가 그리는 중년 남성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열심히 발맞추는데도 뒤로 밀려나는 그들은 누구인가.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따라가면 ‘이 시대 아빠들의 애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단편소설로 문학적 묘미를 느껴보라

단편소설은 선명한 주제를 짧은 이야기에 담아 긴 여운을 남긴다. 학기 중에 바빠서 독서하기 힘들 때는 한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로 문학적 감수성을 길러보라. 탄탄한 구조와 미학적 표현을 통해 문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알리자는 취지에서 5500원에 출시한다. 대학에서 수강생에게 책을 구입하라고 권해도 부담이 없는 가격이어서 늘 고마운 마음이다. 재판을 찍을 때 1만2000원으로 가격이 올라가니 매년 4월이나 5월에 책이 나오는 즉시 구입하는 게 좋다. 손보미 작가와 이장욱 작가가 4회에 걸쳐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두세 번씩 수상한 작가가 많은데 7회에 몇몇 작가가 새롭게 진입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단편소설이 묘사에 치중했다면 2010년 이후의 작품은 스토리가 강화되고 소재도 다양해졌다. 문학을 전공하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소설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느끼고 싶다면, 고전 작품뿐만 아니라 우리 곁에서 삶을 진지하게 그리는 한국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져보라. 어디선가 만난 듯한 살아 있는 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소개할 것이다.

이근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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