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하는 중국 과학·공학…이대로 가면 완전히 밀린다"
베이징대·칭화대 등의 '성과연동 임금체계' 배우고
벤처도시 선전 찾아 활발한 '창업 생태계' 체험
[ 황정환 기자 ]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에서 투고 논문을 심사해 달라는 이메일이 매일 여러 통 오는데 대부분 중국 학자 논문입니다. 몇 년 전까지도 논문의 질이 좋지 않아 대부분 거절했는데 요즘엔 좋은 논문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서울대 자연과학대학 A교수)
“중국에선 같은 대학 교수라도 연구 실적에 따라 연봉이 최대 열 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한국은 10~20%에 불과하죠. 해외로 나갔던 인재가 중국으로 돌아가 좋은 연구물을 내놓는 게 당연합니다.”(서울대 공과대학 B교수)
중국 대학이 이공계 분야에서 한국 대학의 수준을 넘어섰다. 자연과학은 물론 한국 산업이 우위에 있는 공대 분야에서도 중국 대학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울대 이공계는 중국 대학의 약진에 위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 학장, 부학장이 오는 6~7월 중국 베이징과 선전을 직접 방문하기로 한 이유다. 단기간에 중국 대학들이 이공계 발전을 이끈 비결을 배우러 가는 것이다. 서울대 이공계 학장단이 한꺼번에 중국을 찾는 것은 처음이다.
○과학·공학·창업 모두 밀린다
중국 대학 이공계 분야의 급성장은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가 지난달 내놓은 네이처인덱스(연구성과 평가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연구실적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서 전체 50위권에 진입한 중국 대학은 일곱 곳에 이른다.
명문으로 꼽히는 베이징대(11위)만 들어간 것이 아니다. 국내에는 생소한 중국 대학들이 대거 약진했다. 난징대는 한 해 전보다 8계단 오르며 20위를 기록해 칭화대(24위)를 따돌렸다. 화학 분야에선 세계 7위로 미국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 영국 옥스퍼드대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2년까지도 세계 108위에 머물던 난카이대 역시 50위로 뛰었다. 반면 서울대는 57위로 한 해 전(49위)보다 8계단이나 미끄러졌다. 서울대 이공계의 한 대학원생은 “몇 년 전만 해도 베이징대, 칭화대와 경쟁했는데 이제는 중국 2부리그 대학들에도 밀리고 있다”고 했다.
이공계 경쟁력 약화는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학계 전문가들은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되는 반도체나 나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전자 분야 논문의 70~80%를 중국계 학자들이 싹쓸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철강 등 한때 한국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산업 분야 역시 중국이 관련 학계를 주도하고 있다. 이건우 서울대 공대 학장은 “대학이 밀리면 결국 산업도 뒤처지게 된다”며 “이대로 가면 5~10년 안에 한국의 1등 산업이 거의 남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창업 분야에선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차석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선전에는 창업공간을 내주는 것을 넘어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구현하기까지 투자·마케팅·제조 등 전 과정을 돕는 세계적 액셀러레이터(창업 보육기관)가 몰려 있다”며 “이들이 선전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 부품기업 절반이 몰려 있어 어떤 부품도 반나절이면 배송되는 인프라는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대 교수들 “중국서 실마리 얻겠다”
자연대 학장단은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베이징 내 주요 대학을 찾아 중국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어떻게 대학에 배분되는지, 같은 학과에서도 최대 열 배까지 차이가 나는 ‘성과 연동 임금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울 예정이다. 김성근 서울대 자연대 학장은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연구개발 분야에선 어떤 국가보다 자본주의적”이라며 “이번 방문을 통해 중국에서 막대한 예산을 어떻게 혁신적 연구에 배분하는지와 성과와 보수를 어떻게 연동하는지 보려 한다”고 말했다.
공대 학장단은 중국 최대 제조업 창업·벤처 도시인 선전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들을 찾아 알리바바와 샤오미 등 세계적 기업을 낳은 중국 창업 생태계를 배울 계획이다. 곽승엽 서울대 공대 학생부학장은 “최근 청년창업에 대한 지원이 늘고 있지만 창업공간을 내주고 멘토링을 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기존의 한국 주력 산업들이 침체를 겪고 있는 지금이 창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성근 학장은 “기술 경쟁력의 원천은 대학의 연구 역량”이라며 “매년 우수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외국에 나갔던 인재들이 돌아와 이공계 급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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