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쌀 자립길 연 허 교수
통일벼 개발로 국민 식생활 개선
[ 박근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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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자립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은 고(故) 허문회 서울대 명예교수(1927~2010)다. 허 교수는 1972년 외래종자인 자포니카와 인디카를 교배해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통일벼를 개발했다. 1976년 비로소 한국은 쌀 완전 자립에 성공했다. 허 교수의 제자인 고희종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선생은 평생 벼 종자와 작물 개량의 한길을 걸었다”며 “그의 노력으로 한국이 벼 육종 분야에서 최고 위치에 올랐다”고 말했다. 정부도 그의 업적을 기려 50원짜리 동전 뒷면에 통일벼를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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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내 농가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자포니카 품종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품종은 키가 커서 잘 쓰러지고 병충해에 약했다. 허 교수는 처음에는 열대형 벼인 인디카종에서 도입 대상을 골랐다. 이 품종은 국내에선 재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그는 다시 온대형 벼인 자포니카종과 인디카종을 교잡해 신품종을 개발하는 연구에 들어갔다. 하지만 두 종은 교배하기 어렵고 교배에 성공해도 불임이어서 종자를 맺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허 교수는 냉온에 견디는 인디카종(TN1)과 출하 시기가 빠른 자포니카종(유카리)을 교배한 뒤 생산성이 뛰어난 인디카종(IR8)과 다시 교배하는 방식으로 ‘IR667’이라는 통일벼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벼는 잎이 곧게 뻗어 태양빛을 이용하는 효율이 높아 생산성이 좋다. 수확량도 30% 이상 많다. 일본 학자들도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통일벼가 1977년 세계 최고 수확률을 기록하자 종자를 가져가 일본 ‘통일벼’로 개량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학자로서 원리 원칙을 중요시했다. 지식인으로서는 드물게 6·25전쟁에 참전해 상사로 전역했다. 고 교수는 “통일벼 개발에 성공한 뒤 여러 차례 높은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학교 보직을 딱 한 차례 마지못해 맡은 일 빼고는 평생 연구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통일벼는 맛이 떨어지고 냉해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1992년 정부가 수매를 중단한 뒤 농가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허 교수의 육종 기술을 이어받은 제자들의 활약으로 자포니카를 개량한 쌀 품종이 안방 식탁에 오르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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