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 일본 인문계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종합상사였다. 미쓰비시상사 미쓰이 이토추 마루베니 등 유명상사들이 취업 희망 1~5위를 휩쓸었다. 노동조건도 열악했고 임금도 많이 받지 않았지만 세계 시장을 개척한다는 상사맨들의 이미지가 대학생들에 먹혀들었다. 이 신화는 한국에도 전파됐다. 90년대엔 소니나 도시바 등 전자업계에 대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힘이 전자업계에서 나왔던 시절이다. 일본은 그러다 ‘잃어버린 20년’을 맞는다. 대학생들은 안정된 기업을 찾았다. 일본 NTT나 철도회사, 금융회사들이 이때 인기를 끌었다.
올해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조사한 내년도 대학 졸업 예정자들의 취직 희망기업 1위(문과계열)는 JTB여행사였다고 한다. JTB는 물론 연간 매출이 1조3000억엔이 넘는 여행 대기업이다. 최근 몇 년간 취직희망에서 줄곧 1위를 유지하고 있다. IHS라는 벤처 여행사도 3위를 차지했다. 일본인들의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해외관광객도 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는 간다. 항공업체나 보험 금융업체들도 10위 내에 들고 있지만 제조업은 한 곳도 없다.
이공계 희망기업도 흥미롭다. 이공계 선호 1위 기업은 식품회사인 아지노모토(味の素)다. 산토리(5위), 가고메(6위), 메이지그룹(7위), 야마자키제빵(9위) 등 10위권 내에 5개 기업이 식품이나 음료회사다. 이공계에선 전통적으로 전자업계가 독보적이었다. 소니를 필두로 NEC 도시바 미쓰비시 히타치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란히 1~5위를 차지했다. 올해 4위인 도요타자동차가 인기 순위 10위 내에 진입한 것도 2000년대 이후였다. 하지만 지금 전자기업에선 소니가 10위로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식품기업은 그다지 연구개발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생산현장도 열악하지 않다. 산업 현장을 기피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데 일본 대학생들이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물론 10년 동안 진행 중인 전자업계의 구조조정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여행이나 식품 음료사업 등은 생활과 직결된 소비재나 서비스산업이다. 이런 업종에 일본 우수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 산업 패러다임의 큰 변화다. 일본은 이런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대학생들도 일본을 따라갈 것인지. 그렇다면 점점 더 치열하고 복잡해지는 글로벌 경쟁 업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산업은 너무 빨리 변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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