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산업 규제 여전…21세기 한국에 '적기조례' 망령이

입력 2016-05-16 17:38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네거티브 규제(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가 현장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드론, 웨어러블 기기, 무인자동차 등을 적시하며 “일단 시장에 출시하도록 하고 사후에 인증규격을 만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네거티브 규제로 허용된 신산업은 아직 없다. 외국에선 택배에도 쓰이고 있는 드론은 항공법에 따라 사진 촬영, 농약 살포 등 제한적인 경우에만 사용이 가능하고 해당 규제를 풀기 위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되지도 않았다(한경 5월16일자 A1, 8면).

신산업은 세계적인 혁신기업들이 사업화에 성공한 뒤 한국으로 진출하는 것이거나, 한국의 혁신 기업들이 새롭게 창출한 비즈니스다.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가치가 있는 데다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조기에 산업화해야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관련 법규정이 없어 정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일단 허용하자는 네거티브 방식이 제안된 것인데, 현장에서는 오히려 규제가 더 강해지고 있다. 공무원들은 이해집단을 핑계로 삼는다. 공유민박업인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체들 때문에, 버스카풀 서비스인 콜버스는 택시와 버스업계의 반대 때문에 허용하지 못한다는 게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1865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적기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가 떠오Ⅴ? 증기자동차가 실용화돼 인기를 끌자 마차업자들이 반발해 나온 규제다. 자동차는 마차보다 느리게 달려야 했다. 당시 시속 30마일을 달릴 수 있었는데, 규제에 따라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 시내에서는 2마일로 속도가 제한됐다. 기수 한 명이 마차를 타고 자동차 앞을 달리며 낮에는 붉은 깃발로, 밤에는 붉은 등으로 속도를 조절했다. 규제가 폐지되기까지 30년이 걸렸는데, 그 사이 세계 자동차산업은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후발국’들의 차지가 됐다. 21세기 한국 공무원들이 이 ‘적기조례’를 만들고 있다. 한국 신산업의 속도도 서서히 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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