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장관 "청년 160만명 논다면 사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움 앞선다"

입력 2016-05-16 18:22  

물 건너가는 노동개혁 이기권 장관의 작심발언

"상위 10% 대기업 노조 등
과실 혼자만 갖지 말고 협력업체로 흘러가게 해야"



지난 주말 강원 춘천에 있는 한 대학을 찾아 학생들과 진솔하게 대화했다. 일자리 정보와 정부의 청년지원대책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 여학생의 질문은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방학 때는 물론 학기 중에도 하루 두 시간 정도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나요?” 어쩌다 우리 아들·딸들이 아르바이트 중에 실업급여를 받고 싶어하는 상황까지 오게 됐을까. 장관, 국무위원이라는 신분을 떠나 부모세대로서 너무 미안하다.

지금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능력과 건전한 정신을 갖춘 세대라고 하지만 일자리 걱정에 몹시 아프다. 청년일자리 주무 장관으로서 가장 두려운 것은 청년 취업애로계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득권 지키려는 노조, 입법 주저하는 정치권…아들·딸 세대가 용서할까"

왜일까? 한국은행에 의뢰해 우리 노동시장의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 수급상황을 학력 기준으로 분석해봤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업계 평균임금 이상의 괜찮은 일자리가 530만개, 전문대졸 이상으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나 졸업 예정자는 495만명 정도였다. 어지간한 청년들은 쉽게 괜찮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후 15년 동안 괜찮은 일자리는 더디게 늘어 2012년 말 602만개에 그쳤다. 이에 비해 전문대졸 이상은 1050만명에 이른다. 440만여개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청년들이 괜찮은 일자리에 진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지난달 청년 일자리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대책은 청년들이 좀 더 쉽게 더 나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호텔 건립 규제 완화 등과 관련해 올해 9월과 11월 정부와 기업이 500여명 규모의 호텔리어를 채용하는 박람회를 열기로 한 것처럼 앞으로 정부는 주요 정책을 청년 일자리와 연계해 추진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에게는 2년 동안 1200만원 정도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 중소기업 지원과 장기근속을 유도할 방침이다.

이런 대책들이 청년 취업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취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청년 일자리는 기업과 민간부문의 투자에 따라 창출되기 때문이다. 투자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력이 높아져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제 5단체, 3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기업의 가장 큰 가치와 지향점을 청년 일자리에 두는 경영을 해달라고 호소하는 이유다. 동반성장 및 공정거래 확립?통해 협력업체의 근로 조건을 향상시켜 청년들이 마음 놓고 중소기업에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도 당부하고 있다. 9·15 노·사·정 합의 이후 다양한 법적·제도적 보완도 했다. 앞장선 기업에는 세제상 혜택을 주고 정부조달 등에 있어 우대 조치도 한다.

그럼에도 한계를 절감한다. 한국만이 안고 있는 노동시장의 불합리한 관행과 법·제도가 개선돼야만 실질적인 고용탄성치(한 산업의 경제 성장에 따른 고용변동의 크기)가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연공서열식 임금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고치고, 통상임금·법정 근로시간 및 근로계약 관계를 둘러싼 갈등 소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대기업·공기업 노조가 막강한 교섭력을 앞세워 기업의 성과를 독점할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청년 취업에 대한 정부지원 대책과 노동개혁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청년들을 취업으로 온전히 인도할 수 있다. 지난해 노·사·정 대타협을 할 때 청년취업애로계층이 110만여명이었는데 6개월 새 121만명으로 증가했다. 노동개혁 등 특단의 노력이 성공하지 않으면 3~4년 뒤 40만명의 청년취업애로계층이 더 생긴다. 우리 사회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노사단체가 기득권을 지키고자 노동개혁을 반대하고 정치권이 노사단체의 반대 때문에 노동개혁 입법을 주저하고 적기에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 아들·딸에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필자가 늘 만나는 청년 대부분은 정부에 특별한 지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어른 세대와 공평하게 일할 기회를 달라고 얘기한다. 청년은 우리 미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소위 ‘N포세대’ 청년에게 우리 어른 세대가 해야 할 일은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있는 ‘희망’을 꺼내 주는 것이다. 일자리에 대한 희망을 보여줘 ‘MD(more dream)’세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년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되면 지금의 어른 세대를 평생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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