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실리콘밸리의 열린 혁신

입력 2016-05-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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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대학이 유기적으로 협력
기업은 경영·기술적 문제 해결…대학은 문제해결 역량을 축적
M&A와 협업을 통해 필요 역량 확보 방식도 주목

조명현 < 고려대교수·경영학 chom@korea.ac.kr >



얼마 전 미국 서부 명문 스탠퍼드대와 실리콘밸리를 다녀왔다.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는 스탠퍼드대가 어떻게 기업과 협력하고 있는지, 실리콘밸리라는 지역적 특성과 연계된 스탠퍼드대의 연구역량이 기업들에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실리콘밸리 탐방을 통해 구글 등 기업들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살펴봤다. 한국의 대학, 기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절감했다.

우선 실리콘밸리에서는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력 연구활동이 한국에 비해 훨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연구협력은 공학 및 경영학 관련 분야는 물론이고 심리학, 사회학 등의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태평양 반대편에 있는 일본 기업조차 자신들의 경영과 관련한 문제를 실리콘밸리적 사고로 해결하기 위해 스탠퍼드대와 협력하고 있다. 기업이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를 관련 분야 교수진과 학생들, 기업 임직원이 팀을 이뤄 고민하며 유기적으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직면한 기술적·사회적·경영적 문제들을 같이 해결하면서 스탠퍼드대는 문제 해결 역량을 더 높게 축적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과 기업이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공과대학 정도에서만 기업 연구비를 받아 일정 수준의 관련 연구를 할 뿐, 다른 학문 분야는 기업과의 연구협력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대학이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쌓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생들을 다시 교육시켜야 한다는 기업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대학과 기업 간의 유기적 협력은 꼭 필요해 보인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구글 등에서 일하는 제자들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과 관련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글의 ‘20% 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구글 직원이 근무시간 중 20%를 일과 상관없는 자기계발이나 재충전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20% 시간을 그냥 여가를 보내거나 자기계발에 쓰는 것이 아니었다. 자기 업무에 집중하던 중 떠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내 게시판 등을 통해 공유하고 이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낀 직원들이 동아리처럼 모여 20% 시간을 활용, 해당 아이디어를 사업화한다는 것이다.

회사도 이런 아이디어가 일정 궤도에 오르면 사업화될 수 있도록 본격 지원한다. 사업화 가능성이 커지면 동아리 참여자들이 정식 팀을 구성해 새로운 사업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런 유연성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직원들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사업에 대해 책임지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회사 차원에서는 신사업이 오픈 플랫폼적인 모습으로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다. 몇 명에서 몇 십 명 단위의 직원들이 ‘신사업개발팀’에서 신사업을 발굴하느라 머리를 싸매며 끙끙대는 한국 기업들과 비교해 보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왜 신사업을 그렇게 많이, 그리고 또 성공적으로 만들어 내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과 ‘열린 혁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사실 또한 시사점이 컸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없는 기술이나 역량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거나 협업을 통해 필요한 역량을 확보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그룹 내에서 자력으로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우리 대기업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선도적 기업의 역량 개발 모델을 제시해 준다.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겠다는 연구개발(R&D) 정책에서 기업과 대학이 좀 더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인(誘因)과 방안이 포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기업들도 좀 더 유연한 사고와 열린 경영이 21세기에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높여 갔으면 한다.

조명현 < 고려대교수·경영학 chom@korea.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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