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력감축 불가피한데…노조 듣기 좋은 소리만 한 여야 대표

입력 2016-05-23 18:12  

거제 조선소 노조 들쑤신 정치권

정진석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여당 대표가 정부 압박 발언
더민주 "구조조정 범위 최소화"…"헛된 희망만 심어줬다" 지적



[ 도병욱 / 김기만 기자 ]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3일 나란히 경남 거제에서 내놓은 메시지는 비슷했다. 구조조정을 시작하기 전에 근로자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경영진 및 소유주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업계 구조조정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제안은 없었다. 조선업계 경쟁력을 약화시킨 주범으로 평가받는 고임금 체계 및 공급과잉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여야 지도부가 대우조선 노조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고 떠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주장 되풀이한 김종인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노조에 경영감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신이 평소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기업을 감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 한국 기업들의 운영상 가장 큰 문제는 경영 감시체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1981년 노동법을 만들 때 노사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는데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노동청이 위헌적 태도로 반대했다”고 말했다.

노조에 경영감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조선업계 노조가 계속 요구해온 것이다. 현시한 대우조선해양 노조위원장도 이날 김 대표에게 “노조의 경영감시 및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임금단체협상 때마다 노조의 경영 참여를 요구해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을 감시한다면 그 어느 회사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노조에 구조조정을 막을 무기를 주겠다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와 함께 대우조선을 찾은 변재일 정책위원회 의장과 최운열 정책위 부의장 등은 구조조정 범위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우조선과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이미 인력 3000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야당 지도부가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우조선 직원들에게 ‘헛된 희망’만 심어줬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 부의장은 “구조조정이라 하면 사람을 해고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이건 방법이 아니다”며 “2018년이 되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람에 대한 구조조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경수 당선자(김해을)는 “정부가 선박을 발주해 조선산업이 살아날 때까지 (조선사들이) 버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압박하고 나선 정진석

김 대표보다 약 1시간 먼저 대우조선 노조를 찾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조선산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정 원내대표는 “정부가 조선산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신속하게 지정할 수 있도록 당에서 챙길 것이고,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여야 대표단의 이날 발언 때문에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계 ‘수주절벽’이 예상보다 심각해 구조조정을 한시라도 빨리 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정치권의 개입이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구조조정을 더욱 지연시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조선산업 위기의 본질은 고임금 체계와 공급과잉인데, 여야 대표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며 “현실성은 없지만 노조가 듣고 싶어하는 얘기만 하고 떠났다”고 지적했다.

도병욱/거제=김기만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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