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옥시 참사' 정부·기업 책임 명확히 해야 재발 막는다

입력 2016-05-26 18:10   수정 2016-05-31 13:31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인과 해결책

17년간 국민 속인 가습기살균제…황당한 사용법이 참사 불러
무능한 관계부처 탓 조기수습 놓쳐…의료현장 대응도 '실망'
의료기록으로 피해 인정해야…'노케미 열풍'에 또다른 화 우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교수 >



모든 화학물질을 거부하는 ‘노케미(No-chemi)’ 열풍이 거세다. 환경부가 뜬금없이 내놓은 살생물질(biocide) 전수조사 계획 탓에 시작된 일이다. 물론 비정상적인 살균 광풍에 휩쓸린 생활용품의 오·남용은 막아야 하지만 무분별한 노케미 열풍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맹목적으로 안전성만 강조하는 정체 불명의 친환경·천연 재료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진정한 친환경 제품은 환상일 뿐이고, 천연 재료가 인체에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도 착각이다.

살생물질은 과도하게 사용하면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정에서 어설프게 만든 생활용품의 품질과 안전성은 아무도 보장해줄 수 없다. 세균과 곰팡이 오염에 의한 피해도 걱정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당시 유공이 CMIT·MIT 성분이 든 ‘가습기메이트’라는 가습기 전용 살균·세척제를 내놓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11년 생산·판매가 금지되기까지 17년 동안 ‘안전성’과 ‘세계 최초’를 앞세운 광고로 청결을 중시하는 주부 소비자들을 파고들었다. 이후 PHMG를 사용한 제품도 출시 됐는데 옥시레킷벤키저의 PHMG 제품을 쓴 소비자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 환경부에서 원료와 피해에 대해 전반적인 실험과 재조사를 한다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5년간 눈치 못 챈 살균제 피해

가습기 살균제는 태어날 이유가 없는 제품이었다. 초음파 가습기의 살균·세척은 일반 세제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제조회사가 제시한 황당한 사용법이었다. 인체에 해로울 수밖에 없는 살균제를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연속적으로 분무하는 사용법은 정상이 아니다. 사람이 거주하는 실내에서 그런 사용법을 쓰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폐는 우리 몸에서 면역 기능이 가장 취약한 부위기 때문이다. 더욱이 폐로 흡입된 살생물질은 혈액으로 흡수돼 몸 전체에 피해를 준다. 살인적인 사용법을 묵인해준 곳은 ‘공산품품질관리법’에 따라 세정제를 비롯한 공산품의 품질과 안전 관리를 책임지던 산업통상자원부였다. 법과 제도가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산업부가 세정제라고 눈감아준 가습기 살균제에는 어떤 세정·세척 성분도 들어있지 않았다. 산업부가 세척력이 전혀 없는 ‘썩지 않는 맹물’을 공산품으로 관리해왔던 셈이다. 일부 제품에는 안전 관리를 인증해주는 KC마크까지 붙여주기도 했다. 제품의 안전 관리를 기업 자율에 맡겼다고 해서 관리 책임이 있는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세계 최초·유일의 살인적인 생활용품이 버젓이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하게 산업부의 무능과 무책임 탓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알아낸 과정도 실망스러웠다. 2001년 옥시레킷벤키저가 ‘옥시싹싹’을 출시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소비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피해자도 빠르게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까지 의료 현장의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2010년까지 5년 동안 발견된 29명의 특이 환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초 메르스 환자로부터 메르스바이러스 정체까지 밝혀낸 이집트 출신 의사의 전문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도 미생물에 의한 감염성 질병만 관리한다는 고집을 쉽게 버리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질병관리본부의 오판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밝혀지고 난 뒤 질병관리본부의 판단은 황당했다. PHMG(옥시싹싹)와 PGH(세퓨)를 사용한 제품만 문제고, 피해 증상도 ‘폐섬유증’에 한정된다는 결론은 과학을 철저하게 외면해버린 부끄러운 것이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어설픈 동물실험을 근거로 사태를 은폐하고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CMIT·MIT는 원인물질에서 제외됐고, 천식·비염·폐렴·편도염·호흡곤란·후두염 등은 피해 증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 CMIT·MIT가 든 제품만을 사용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소비자 사례는 현재까지 3건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에 대한 대책도 황당했다. 지난 5년간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한 환경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도를 넘어선 것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이 충분히 밝혀진 2013년 이후에도 환경부의 대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현대 과학과 인간 예지력의 한계를 들먹이면서 시간을 끌었던 것이 전부였다.

꼼짝도 하지 않던 검찰이 뒤늦게라도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선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수사와 피해보상은 여전히 원점을 맴돌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잘못된 판단이 여전히 검찰과 환경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외국계 기업과 영세업자에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 책임도 분명하게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불행한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분명한 피해자를 눈앞에 두고 피해 사실을 동물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의 주장은 반(反)과학적이고 반(反)인간적인 것이다. 살생물질의 만성 중독에 의한 모든 증상을 동물실험을 통해 밝혀낼 수는 없다. 피해자들의 의료기록에 대한 정밀 분석에 의존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석면 중독 피해자들의 경우가 그랬다. 석면 노출의 경우 동물실험 자체가 불가능했다. 석면 노출 사실을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를 요구할 수도 없었다. 결국 피해자들의 영상진단 자료에서의 특이사항을 통해 피해 사실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동물실험이 만능일 수 없어

생활화학용품의 부패와 변질을 막는 보존제로 사용되는 살생물질의 인체 독성을 동물실험으로 확인하겠다는 환경부의 정책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에 대한 안전 관리를 위해 반드시 동물실험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만으로도 예방 차원의 관리가 충분히 가능하다. 어차피 동물실험으로는 인체 독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없다.

그런 일에 쓸 예산은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참혹한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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