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퇴출 위기 몰렸던 태권도
공격 위주 진행·전자호구 도입 등 기존의 규칙 바꿔 정식종목 유지
규제개혁 '찻잔 속 태풍' 안되려면
지금은 산업간 경계 희미해져 단일기술 모델의 규제 부적절
경제활동 '게임 규칙' 바꿔야
올초 한국은행은 한국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이 3%대 초반(3.0~3.2%)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경제 성장의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는 뜻인데, 여론의 반응은 새삼 놀라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아마도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한 것에서 보듯이 저성장의 고통을 이미 겪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상태로 가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는 암울한 전망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경제 부진이 이어지고 갈수록 활력이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해를 돕기 위해 재미가 없어 관중이 외면하는 운동경기가 있다고 하자. 한때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던 레슬링, 태권도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축구, 야구, 골프 등 많은 경기가 독자적인 산업으로 발전하는 속에서 어떤 경기는 사양산업 취급을 받는다면 원인이 무엇일까.
관중의 취향 변화를 제외하면 경기의 활성화는 규칙, 판정, 선수의 역량 및 전술 등에 좌우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의 내용과 판정의 공정성이다. 선수의 잠재 역량이 출중해도 경기 규칙과 판정이 모호하면 누구도 실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퇴출 위기에 몰렸던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살아남은 것도 공격적인 경기 진행을 위해 채점 방식을 바꾸고, 판정 시비를 막기 위해 전자호구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기존의 규칙을 바꾸는 혁신을 해서다.
위의 비유에서 경기 규칙은 규제를 포함한 경제제도에 해당한다. 규제는 경제활동 게임의 규칙이며, 정치적 과정을 통해 국회와 정부에서 정한다. 심판 판정에 해당하는 규칙의 집행과 판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역할이다. 그리고 선수는 주어진 게임 규칙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과 국민, 즉 경제인에 해당한다.
따라서 운동경기 비유의 연장선에서 한국 경제 부진의 근본 원인을 짚어보면 경제활동 게임 규칙에 해당하는 제도, 그중에서도 특히 규제환경의 문제부터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기업이 투자를 덜 한다, 국민이 지갑을 덜 연다는 등 경제 부진의 원인으로 선수 탓을 하기도 하나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동안에도 규제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꾸준히 지목돼왔다. 김대중 정부 이후 역대 정권이 모두 규제개혁을 강조했고, 현 정부도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이라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는다”고 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규제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이 조사한 글로벌 경쟁력 지수 중에서 기업인이 평가한 정부규제부담 지수는 한국이 140개국 가운데 97위로 사실상 꼴찌 수준이다. 달리 말하면 역대 정권마다 규제개혁의 기치를 내세우고 많이 노력했다고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별반 개선된 게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규제개혁을 강조했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규제는 경기의 규칙처럼 또는 교통량이 많은 네거리의 신호등처럼 반드시 필요한 측면이 있다. 운동에서의 규칙은 경기를 활기차고 재미있게 하는 데, 그리고 신호등은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은 원리로 경제 규제 또한 시장거래에 수반되는 비용을 낮추고 생산적인 기업가 정신의 발현을 뒷받침하는 것에 목적을 둬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의 규제는 체계와 내용에서 생성 과정 및 집행단계에 이르기까지 병으로 치면 중증(重症) 상태다. 과거에는 하나의 기술을 중심으로 특정 산업이 발전했다면 지금은 여러 기술이 융·복합하면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시대다.
그러나 한국의 규제는 ‘단일 기술-단일 산업’의 과거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법령에 열거하지 않은 신기술이나 신사업 모형을 불법으로 간주해 금지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기술과 사업 모형에서 새로운 시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금지하는 미국 등의 선진 규제시스템과 비교하면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저해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의 규제는 시장과 기술의 새로운 변화에 열려 있는 시스템이라면 한국은 새로운 가능성에 닫혀 있는 시스템이다. 만약에 한국 정부와 국회가 시장 또는 기술의 변화 추세에 앞서 굽╂岵막?법령을 올바로 개정할 수 있다면 한국이나 미국의 규제 환경에서 실질적 차이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상적인 정부나 국회라고 해도 시장 변화와 기술 진보 속도에 선제적 대응은 고사하고 뒷북치며 따라가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이렇게 규제 환경이 열악한 한국에서 미국처럼 혁신기업이 속출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 얻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산업현장에서 규제개혁을 체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행정부처마다 이유를 내세우며 규제관할권을 분점하는 상태가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튜닝이 그런 경우다. 자동차 5대 생산국의 면모에 걸맞지 않게 튜닝에 부정적이던 정부가 창조경제산업의 일환으로 이를 합법화하자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각자 산하에 비슷한 협회를 두고 관할권을 분점한 것은 비근한 사례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고 국내에서도 수요가 적지 않은 탐정(민간조사제도)이 한국에서 불법인 까닭이 행정자치부와 법무부가 관할권을 주장하며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 경제가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려면 경제활동 게임의 규칙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왔듯이 새로운 기회와 도전에 닫혀 있는 현재의 시스템, 그리고 관할권 중첩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어떤 규제개혁 노력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규제개혁의 추진 주체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규제의 권한을 늘리는 데 더 관심이 있는 행정부에 개혁을 주도하라는 것은 고양이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라는 것과 같아서 耐袖?성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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