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의원 입법의 심각성은 김한근 국회 법제실장이 한경과의 인터뷰(5월30일자 A8면)에서 증언한 그대로다. 19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법제실에 제출한 법안 초안은 2만9157건으로 18대 국회 때의 세 배 수준으로 급증했으나, 이 중 39.1%인 1만1407건은 법안으로서 적합 판정을 받지 못해 법제실의 권고로 철회됐고, 발의로 이어진 법안은 27%(7881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형식 요건조차 못 갖춘 법안들이 쏟아졌다는 얘기다. 내용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미 관련 법안이 통과돼 규제가 풀린 상황에서 도로 규제를 강화한다거나 상위법과 상충하는 법안을 끝까지 고집하는 의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19대 국회에서 정식으로 발의된 의원입법안 1만5444건 중 65.4%인 1만98건이 폐기 철회 부결 등으로 통과되지 못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누가 법안을 많이 만드느냐 하는 따위의 입법경쟁은 결국 입법권 남용, 과잉입법으로 치달을 뿐이다. 19대 국회가 그런 국회였다. 20대 국회에 입성한 132명의 초선의원을 포함한 300명의 의원은 의욕이 넘칠 것이다. 그러나 입법권한보다 책무가 무엇인지부터 숙고해야 한다. 무슨 법안이든 찍어내기만 하면 법이 된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최운열 더민주 정책위 부의장이 “법 하나에 수십개 규제가 붙기 마련인데 의원의 법안 발의 문턱이 너무 낮다”고 지적한 것은 백번 옳은 말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규제를 몇십개, 몇백개나 새로 만드는 법안을 마구 찍어낸다면 그것은 입법 독재일 뿐이다. 입법권과 법안 만들기를 혼동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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