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인 지난달 30일, 홍익대 정문에 일베를 의미하는 손가락 모양 대형 조형물이 등장했다. 정규수업 출품작이었다. 창작자인 이 대학 조소과 홍기하씨(22)가 붙인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그는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일베를 실체로 보여줌으로써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작품 의도”라고 밝혔다. 이어 “작품이 이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베를 ‘표현의 자유’ 범주로 볼 수 없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끝내 조형물은 1일 오전 바닥에 쓰러지고 손가락 부위가 손상된 채 발견됐다. 스스로를 ‘랩퍼성큰’이라 밝힌 김모씨(20) 등 3명은 경찰 조사에서 “조형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려고 부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혐오의 일상화 '일베'라는 현상
문제는 일베였다. 통상 미디어는 일베를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로 소개한다. 이 수식어가 일베의 외피(外皮)라면, 일베의 속성을 집약하는 단어는 ‘혐오’라 할 수 있다. 여성 혐오와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가 일베의 주된 정서를 이룬다.
일베가 만들어낸 혐오는 특수하다. ‘타깃을 정해놓고 집단적으로 행하는 일상화된 혐오’라는 점에서 그렇다. 일베는 여성을 ‘김치녀’, 호남 출신을 ‘홍어’ 등으로 부르며 성별과 지역에 대한 혐오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또 조장해 왔다.
종전까지 개인 수준에서 사안별로 나타나던 혐오라는 감정은 일베를 매개체로 사회적 현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혐오는 일베 외부로도 확산됐다. 대중은 일베 유저를 ‘일베충’이라 부른다. 일베의 혐오와 일베에 대한 혐오가 맞부딪치는 형국이다.
◆ 표현의 자유냐 상식의 부족이냐
창작자 홍씨는 “일베 옹호냐, 비판이냐의 이분법적 의도를 담은 작품이 아니다. 다양한 시각에서 넓은 시야로 바라보고 해석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학과장인 이수홍 홍익대 교수(조소과)도 “일베 논란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일베에 대한) 이분적 대립이 심각해지는 현상을 걱정하며 던진 ‘조형 언어’”라고 전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달을 보느냐 손가락을 보느냐에 따라 일베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지, 상식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지탄받을 행위인지 갈리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의미 있는 발언자다. 진 교수는 평소 일베를 강력 비판해온 논객인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학자이기도 하다.
진 교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글을 올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에 ‘일베 옹호’라는 딱지를 붙이는 해석적 폭력에 물리력을 동원한 실력 행사까지… 어떤 대의를 위해서 표현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짓밟아도 된다고 믿는 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비판했다. “일베보다 더 무서운 게 이런 짓”이라고도 했다.
◆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 문제나 법적 책임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작품 전시부터 파손까지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이어진 퍼포먼스로 해석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이 다분하다”고 풀이했다.
일베의 실재(實在)를 표현하려는 게 창작 취지라면 조형물 파손 행위로 나타난 ‘일베에 대한 증오와 반감의 실재’도 부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일베와 혐오는 ‘동전의 양면’ 같은 일반적 경향성이 됐다.
창작자 홍씨는 “작품에 대한 비난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작품을 훼손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했다. 그가 명명한 제목처럼, 일베에 대한 논란은 어디에나 있고 일베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자리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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