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여러모로 독특한 나라다. 인구 810만명의 소국인데 미국처럼 엄연한 연방국가다. 주(州) 단위인 26개 칸톤(Kanton), 시·군 개념인 2300여개 게마인데(Gemeinde)로 구성돼 있다. 공식 언어만도 네 가지나 된다. 대통령은 7명의 연방각료(장관)가 1년씩 돌아가며 맡는다. 연방각료는 연립정부를 구성한 4개 정당 출신이다. 그러니 지금 누가 대통령을 맡고 있는지 모르는 국민도 많다.
스위스 하면 직접민주주의부터 떠오른다. 그 뿌리는 주민집회를 뜻하는 란트슈게마인데(Landsgemeinde)다. 칸톤마다 4월 마지막 일요일에 광장에 모여 토론하고 거수로 결정했다. 과거엔 ‘칼을 찬 성인남자’만 참여했다. 1990년 헌법 개정으로 여성 참여도 허용됐다. 최근까지 8개 농촌지역 칸톤이 이 제도를 유지했지만 비밀투표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 속에 현재는 2개 칸톤에만 남아 있다.
스위스 직접민주주의는 지역 간 교류가 쉽지 않은 산악지대의 특수성에서 비롯됐다. 칸톤은 한 곳에 평균 31만명, 게마인데는 3500여명에 불과해 마을 단위의 자치전통이 강하다. 지금도 연방정부는 외교 안보 등만 관장할 뿐, 일반 행정은 모두 칸톤이 결정한다. 미국 주(state)보다 훨씬 강한 자치권을 가져 ‘국가 속의 국가’인 셈이다.
근대의 국민투표도 스위스가 처음이다. 1848년 ‘헬베티아 연방공화국’의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게 효시다. 그 전까지 스위스는 칸톤 간의 느슨한 연합체였다. 지금도 헌법·법률의 최종 결정, 국가적 중요 정책을 놓고 연간 2~4차례 투표를 한다. 헌법 개정은 18개월간 유권자 10만명(의회 통과 법률은 100일간 5만명)의 서명을 받으면 국민투표에 올릴 수 있다. 대개 국민 과반수가 찬성하면 통과되는데 헌법 개정, 국제기구 가입 같은 중대 사안은 국민과반수에다 칸톤 과반수(13개 이상)가 찬성해야 가결된다.
스위스는 1848년 이래 지금까지 총 606개 안건에 대해 국민투표를 했다. 예컨대 2014년 국민투표에서 건강보험의 낙태 지원 중단은 부결됐고, 이민자 쿼터 제한은 가결됐다. 이외에도 원전, 철도망 확충, 이슬람 첨탑 신축 금지 등까지 국민투표에 부쳤다.
최근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모든 성인에게 월 3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안이 76.9%의 반대로 부결됐다는 소식이다. 공짜로 돈을 주되 복지를 줄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재정이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위스에선 ‘위험한 실험’, ‘유토피아적 환상’이란 비판이 거셌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투표를 한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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