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람 증권부 기자 ram@hankyung.com
[ 정소람 기자 ] “벌써 날아간 딜만 몇 개인지…이제 사업 기회를 잡는 것도 검찰 눈치를 봐야겠네요.”
최근 만난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일 검찰이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를 비롯해 오랜 기간 준비해온 글로벌 인수합병(M&A) 건까지 줄줄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의 미국 화학업체 액시올(Axiall) 인수는 거래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검찰의 압수수색 직후 무산됐다. 성공했더라면 롯데는 글로벌 10위권 화학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합작 등으로 그동안 우호적 관계를 쌓아온 글로벌 기업에 ‘백기사’ 역할을 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물거품이 됐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진지하게 검토 중이던 다른 중요한 거래도 백지화됐다”고 털어놨다.
롯데 측은 액시올 인수에 성공하면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자회사인 타이탄을 상장시킬 계획이었다. 롯데가 2010년 사들인 이 회사는 지난해 실적이 크게 좋아져 기업공개(IPO)를 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액시올 인수가 철회되면서 타이탄의 적기 상장 기회도 날아갈 위기다. 호텔롯데가 상장과 별개로 추진 중이던 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 면세점 인수작업도 중단됐다. 롯데가 이 면세점을 인수하면 단숨에 글로벌 1~2위 면세점 자리를 노려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MB) 정부 때 진행된 롯데의 다른 M&A 건까지 수사선상에 오르자 IB업계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08~2012년 롯데그룹이 30여건에 달하는 M&A 계약을 집중적으로 체결했다며 거래 대금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IB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여서 싼값에 살 수 있는 매물이 널려 있었다”며 “기업의 전략적 M&A를 부패의 온상으로 연결지으려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롯데는 지난해 삼성과의 ‘빅딜’을 통해 화학 계열사들을 3조원에 사들이고, 올해 베트남과 파키스탄 등 신흥국에서도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기업 비리는 법에 따라 엄단하는 것이 온당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무지막지한 투망식 수사 행태가 야기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나중에 시시비비를 가려 처벌하게 되더라도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온전하게 경쟁하면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경로까지 막아서는 것은 곤란하다. 호텔롯데 상장을 포함해 롯데가 이번에 접은 딜 중에는 투자 고용 등 국민 경제에 보탬이 될 만한 것도 적지 않다. ‘솜씨 있는 칼잡이’는 이렇게까지 난도질하지 않는다.
정소람 증권부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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