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임원들의 방만 경영과
실시간 대응 능력 부족으로 현재 조선업계 위기 자초
현대중공업 등 '빅3' 기술력 최고
규모만 줄이는 구조조정보다 체질 바꾸는 데 집중해야
고급인력 유출 최대한 막아야
[ 정지은 기자 ]
‘조선(造船) 왕국’으로 불리던 한국이 위기에 처했다. 조선산업 성장에 일생을 바친 원로들에겐 ‘가슴 찢어지는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85·사진)도 지금의 조선산업 위기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다.
신 회장은 1958년 26세의 나이에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 최초로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국제선박검사관이 됐다. 1961년엔 박 전 대통령(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요청으로 조선업 부흥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69년 박 전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비서관 시절에는 초대형 조선소 건설 계획을 구상하며 한국 조선업의 기틀을 닦았다. 울산, 거제 등을 조선업 기반 부지로 선정해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에게 조선소 건설을 직접 제안했다. 업계에선 ‘한국 떼굶汰?아버지’로 불린다.
신 회장은 지난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산업 위기에 대한 진단과 대응 방안을 밝혔다. 신 회장은 “조선산업이 지금 당장 위기라고 해서 사양산업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며 “고급 인력 유출 문제부터 꼼꼼히 살피고 재도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가 어렵습니다.
“요즘 매일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속이 아립니다. 우리 국민에게 세계 1등이라는 자신감을 심어준 ‘효자’ 산업이 하루아침에 ‘패륜아’가 돼 버렸습니다. 물론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지금의 위기를 부추겼습니다. 하지만 외부적 문제만 있던 게 아닙니다. 내부적으로 우리 조선업계가 한동안 너무 자만했습니다. 방만하고 부조리한 부분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 고름이 곪아서 터진 겁니다.”
▷내부 요인은 무엇인가요.
“창업주, 주주들의 안일한 태도와 회사 경영진의 판단 착오가 위기를 막지 못했습니다. 또 세계 시장과 기술 동향에 대한 정보 수집이나 분석 활동에 소홀했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대처 방안이 나오지 못했다고 봅니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이 한국만의 독보적인 기술개발 의지를 갖고 산업 경쟁력을 높였다면 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구조조정 방향이 맞다고 봅니까.
“산업 규모를 지나치게 줄이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조선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취급하고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한국 조선산업이 성장하는 동안 쌓은 우리만의 기술력 ?경쟁력은 엄청난 자산입니다. 이 기술력과 경쟁력에 대한 잠재력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를 중심으로 한 울산 부산 거제 창원에 걸친 우리의 조선 및 조선 기자재 클러스터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무기이자 자산입니다. 이 기반을 활용해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산업 규모를 줄이는 데 대한 우려가 큰 것 같습니다.
“가장 큰 걱정은 인력 유출입니다. 규모를 줄이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인력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고급 인력이 유출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벌써부터 일본, 중국 등에서 한국 조선사의 연구개발(R&D) 인력을 빼가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R&D 인력과 엔지니어 감축만은 막아야 해요. 과거 일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핵심 기술 인력을 대거 정리했다가 경쟁력을 잃고 몰락했습니다. 구조조정은 조선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 조선업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요.
“정부 차원에서 기술연구 전문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어려워도 핵심 기술 인력과 R&D 투자만큼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지요. 조선산업에 애정을 갖고 위기 극복을 위한 정밀진단을 해서 정부나 기업에 건의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조선업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입니까.
“후배들이 정신무장을 해야 합니다. ‘뜻이 있어야 길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철새마냥 편한 길로만 가려고들 합니다. 의지가 없으면 방법이 찾아질 리 있겠습니까. 밤새도록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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