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대규 기자 ] 국내 방위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려면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최저가입찰제도부터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산업체들이 기술과 품질보다 가격 경쟁에 매달리다 보니 저가 불량 부품을 조달해 쓰는 등 방산 부실이 발생하는 주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은 “정부가 방산업체에 낮은 가격을 요구하다 보니 첨단기술 제품이 나오지 않고 성능이 떨어지는 자재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무기 도입 입찰 때 가격보다 성능에 배점을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우덕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교수도 “방산 부실의 상당수가 최저가입찰제 때문에 발생했다”며 “방산업체에 품질 경쟁을 가혹하게 요구하는 미국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군의 과도한 작전요구성능(ROC) 기준도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현실에 맞지 않는 ROC 기준 때문에 국내 방산업체들은 첨단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해외 무기 수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국내 방위산업을 활성화하려면 너무 엄격한 군의 ROC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종하 한남대 정치언론국방학과 교수는 “ROC를 구체적인 수치로 명시하지 말고, 미국처럼 최소값과 최대값만 정해 그 범위에 들어오면 성능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채 학회장도 “군은 ROC의 큰 목표만 제시하고 세부 항목은 정량 평가에서 정성 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100점짜리뿐 아니라 95점짜리 무기도 쓸 수 있어야"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은 “자주포를 만들 경우 ‘사거리를 50㎞ 이상으로 한다’는 큰 목표만 정해주고, 나머지 세부적인 조건이나 기술 등은 업체 자율에 맡기자”고 말했다. 채 학회장은 “작전요구성능(ROC) 기준이 무기 개발을 시작할 때와 개발이 완료될 무렵에 따라 유기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데 현재는 그렇지 못한 게 문제”라며 “신형 기술을 접목한 무기에 ROC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 우덕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교수는 “ROC를 국내 업체들이 대부분 맞추지 못한다는 게 문제”라며 “ROC 충족 조건을 밴드(구간)화하거나, 허용 오차범위를 정하는 등 기술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많다”고 말했다. 그는 “100점짜리 무기뿐만 아니라 95점짜리 무기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 군이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방산업계의 오랜 병폐인 원가 관리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채 학회장은 “이제는 원가를 방위사업청 등이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스라엘이 이 규제를 풀어 방위산업을 村탭?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까지 군이 방산업계의 원가를 통제해오다 이를 철폐하면서부터 방위산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방산업체의 수출비중은 1980년대 평균 30% 수준에서 현재 70%대로 증가했다. 국민 1인당 무기 수출 규모가 세계 1위다. 서 교수는 “한국군이 방산업체와 확정가 계약을 할 경우만이라도 원가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산과 관련된 규제를 네거티브 시스템(원칙 허용·예외 금지)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종하 교수는 “방위사업법은 사고가 날 때마다 개정되면서 ‘누더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방위사업체 권한과 책임만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데 납품 절차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바람에 업계가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방위사업청을 국방부에 흡수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 교수는 “무기 개발 및 도입은 방사청이 하고, 운영은 국방부가 맡는 바람에 두 조직이 책임을 전가하면서 ‘핑퐁게임’을 하는 사례가 많다”며 “방사청을 국방부에 흡수해 한곳에서 모든 무기체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 학회장은 “규제를 아무리 풀더라도 기관 간 협력과 조정이 안 되면 방위산업은 시스템적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청와대에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방산비서관을 둬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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