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소득절벽 닮아가는 한국
정치간섭 말고 성장 위해 달려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지난 주말 일본 경제 현황을 살피러 일본에 다녀왔다. 한국 경제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일본 경제다. 그러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할 답을 찾지 못해서인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중산층의 총체적 붕괴가 밀려온다’는 등의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보내온 지인들의 심정이 그랬을 것 같다.
이들 SNS 글은 한국이 일본처럼 인구절벽·소득절벽을 맞아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산층은 곧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노인 빈곤과 부양 부담으로 고령자 학대가 일상화하며, 빈집이 늘어나 유령도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는 섬뜩하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더 가파른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일깨워주며 일본이 경험한 것을 피부에 와 닿는 사례로 보여주니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라고 하는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생)가 30~40대일 때 부풀어 오른 버블이 40대 후반~50대 시기에 꺼져 불경기가 시작됐는데도 구조개혁에는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자식 세대인 ‘단카이 주니어세대’를 심각한 청년실업 상태로 몰아넣었으며 결혼도 취직도 못하는 ‘잃어버린 세대’로 만들어버렸다. 단카이 세대의 정년퇴직 시점에는 대충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는 시대로 변했다. 2015년 3월 기준 일본의 대졸자 취업률은 96.7%에 이른다. 2015년 기준 한국의 20대 청년 고용률은 57.9%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74.7%나 된다. 한국에서는 청년 일자리가 심각한 문제지만, 일본에선 고급 인력이 취업을 기피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다. 소위 말하는 ‘괜찮은 일자리(500인 이상 기업 취업)’도 일본은 24.3%인 반면 한국은 9%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결과가 인구구조에 기인하는 점이 크다는 사실이다. 경제성장률이 1992년 0%대로 추락했는데도 일본 기업들은 이를 통상적인 경기순환으로 인식해 구조조정을 회피했고 그 결과 과잉인력·과잉설비·과잉채무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구조개혁과 경기 회복 정책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장기 침체를 자초한 것이다. 버블이 꺼지고 자민당 정권이 무너진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줄곧 연립정권이었다는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4·13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구조로 인해 협치(協治) 운운하고는 있지만 구조개혁은 흐지부지되고 하나마나한 정책만 쏟아낸 일본 정치의 재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2년 12월 집권 후 디플레이션 탈피를 내걸고 대규모 금융 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이란 세 가지 화살을 쏘아 올렸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4월부터 지금까지 대략 240조엔(약 2700조 ?의 돈을 풀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이 이어진 덕에 일본은 엔저(低) 호황을 누렸으며 자연히 구조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로 미국의 금리 인상이 늦춰진 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까지 겹쳐 안전자산인 엔화의 가치가 치솟아 엔저 노력이 허사가 돼버렸다.
이런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연일 증폭돼 나타나는 한국의 정치·사회 갈등구조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일본 경제를 답습하는 게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이만큼 온 것은 나름대로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대외지향성, 긍정과 신명의 유전자를 활용하면 3차 산업혁명이 낳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전통 제조업과 연결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국민적 디지털 역량을 본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최적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축소지향이 아니라 성장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기로에 선 한국 경제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 특히 경제부문에 관해서는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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