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판매지역 제한' 해제 20년 지났지만…
향토 소주업체, 수도권 뚫기 힘드네
무학 '좋은데이' 점유율 5% 찍고 급락
마케팅비용 늘어 이익 22% 감소…"서울 진출은 길게 보는 게임"
보해양조, 8개월 만에 철수…금복주·한라산, 일부 마트만 입점
참이슬 거래한 도매상 설득이 관건
하이트진로, 지방 진출로 거센 남진…충청 이남까지 '참이슬 천하'
[ 노정동 기자 ] 1993년 11월 두산이 소주시장에 뛰어들었다. 강원 지역 소주업체인 경월소주를 인수한 것. 이듬해 1월 ‘그린소주’를 내놨다. 투명하거나 푸른색 계열이던 기존 소주병을 녹색으로 바꾸고 대관령 청정수를 사용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7개월 만에 1억병이 팔렸다. 수도권 점유율이 30%에 이르렀다. 지방 소주가 수도권에서 빛을 본 것은 그린소주(‘처음처럼’으로 브랜드 통합)가 마지막이었다. 소주 판매 지역을 제한하는 자도주 보호규정은 1992년 일시적으로 풀렸다가 1995년 다시 부활했고, 1996년 위헌 결정에 따라 완전히 폐지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수도권에 제대로 진출한 지방 소주는 하나도 없다.
○두산 ‘그린소주’ 이후 지방 소주 존재감 미미
정부는 1973년 지방 소주업체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1도(道)1사(社)’ 규정을 내놓았다. 시·도별로 1개 업체만 소주를 생산하게 한 것. 1976년에는 주류 도매상들이 구입하는 소주의 50% 이상을 자기 지역 소주회사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자도주 의무구입제도’도 마련했다. 이 규정 때문에 1970년까지만 해도 200여개에 달한 소주업체는 10년 뒤 10여개로 대폭 줄었다. 20년 후인 1996년 헌법재판소는 “자유경쟁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자도주 규정이 폐지된 것이다. 이후 지방업체들은 수도권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은 여전히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세상이다. 점유율은 52%에 이른다. 이어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 46%다. 20년간 지방 소주업체들이 공을 들였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수도권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업체는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하는 무학이다. 무학은 2009년 파격적으로 도수를 낮춘 ‘좋은데이’(16.9도)로 부산·경남 점유율을 17%에서 2년 만에 64%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기반으로 수도권 공략을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데이’를 서울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무학의 서울·수도권 시장 점유율은 1% 정도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과일맛 소주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점유율은 한때 5%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일시적이었다. 비용도 많이 썼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무학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1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나 줄었다. 판매관리비로만 185억원을 썼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나 늘어난 것이다. 무학은 수도권 진출을 선언하기 직전 해인 2012년 분기 평균 119억원의 판관비를 썼다. 그때와 비교하면 55%나 더 쓴 셈이다. 무학 관계자는 “수도권 진출은 10년 이상 길게 보는 싸움”이라며 “조급해하지 않고 제품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지역업체인 보해양조는 과일맛 탄산주인 ‘부라더소다’로 인지도를 높여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일반 소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보해는 2014년 4월 수도권 소비자를 겨냥해 17.5도 소주 ‘아홉시반’을 내놨다. 하지만 도매상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마케팅비만 치솟자 8개월 만에 영업을 접었다. 대구·경북의 금복주, 제주의 한라산소주 등도 수도권 일부 대형마트에만 제품을 넣고 있다. 수도권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업체 관계자는 “도매상들이 사지 않을 수 없는 인기 제품을 개발해 바닥부터 올라가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자도주 폐지 이후 전국구 업체로
자도주 규제가 풀리면서 신난 건 하이트진로였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절반이 넘는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하이트진로는 강력한 유통망을 바탕으로 역(逆)진출을 시도해 강원, 충북, 대전·충남, 전북에서 향토 소주업체를 제치고 지역 1위 업체가 됐다. 대구·경북, 광주·전남, 제주에선 1위 업체를 바짝 뒤쫓는 2위다. 부산과 울산·경남만이 ‘참이슬’ 이외의 소주가 명함을 내미는 곳이다.
서울 문래동에 있는 한 주류도매업체 대표는 “소주는 맛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을수록 소비자들이 찾는 경향이 있다”며 “도매상으로서는 1%라도 인지도가 더 높은 제품을 사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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