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한경 주필 브렉시트 영국을 가다] 뉴욕 압도하는 런던 금융시장 '브렉시트 쇼크'에도 자신감 넘쳐

입력 2016-07-11 17:34  

영국은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나

네 가지 키워드로 풀어본 브렉시트 논쟁

런던 고급주택가 침실 2개 아파트 한때 150억
연 30만명 이민 받아…자본 이동만큼 개방적
EU 남기엔 너무 혁신적인 영국, 진로는 미지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탐색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사람마다 다른 색깔을 드러냈다. 놀라운 것은 런던 그 자체였다. 런던은 뉴욕을 누르고 이미 세계 최대 금융시장에 올랐고, 실업률은 완전고용 상태였다. 바로 그것이 거대한 이민을 런던으로, 영국으로 끌어들이면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브렉시트는 쇠퇴한 변방의 작은 나라가 잘나가는 유럽연합(EU)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저지른 투표소의 반란 정도가 아니었다. 일부는 EU를 떠나 아쉬워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EU가 붕괴할 것이고 초국가는 불가능한 구조라며 논쟁을 정치철학 문제로 몰아갔다. 브렉시트 논쟁을 몇 개 키워드로 풀어본다.

(1) 부동산

브렉시트 1주일째. 런던 부동산 시장은 공포 그 자체였다. 시내 주요 로펌마다 국제 부동산 계약이 여러 건씩 신속하게 취소됐다. 지난 6, 7일에는 3개의 부동산 펀드가 환매를 중단하는 자멸적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단기 환매를 허용한 구조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 오른 뒤끝이었다. 먼저 숨을 고를 시간부터 갖는 것이 좋다. 런던의 최고 거주지는 메이페어다. 그러나 거래가 없다. 그래서 가격도 쿼트되지 않는다. 다음이 켄싱턴이다. 켄싱턴의 2베드(침실 두 개) 아파트 최고가는 놀랍게도 150억원이다. 3베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300억원이었다. 믿을 수가 없다. 서울 강남 아파트는 ‘껌값’이다. 그러나 며칠째 호가조차 사라졌다. 밤에는 당연히 불 꺼진 집이 많았다. 집주인은 영국이 아니라 각자의 나라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2) 이민

영국은 자본 이동이 자유롭다. 러시아, 아랍, 이탈리아 마피아들도 그렇다. 최근 중국도 가세했다. 이들은 현금을 다발로 싸들고 다니며 금액 불문으로 집을 사들인다. 빅뱅 이후 국제자본 중심지로 뜨면서 영국 내 고액 소득자도 늘어났다. 여기에 이민까지 가세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영국은 매년 30만명씩 이민자를 받았다. 런던은 중앙의 1존(구역)부터 외곽의 존5까지 과녁처럼 구성돼 있다. 켄싱턴 등에 부자들이 밀려들면서 서민 주거지는 외곽으로 밀려났다. KOTRA 등 상사 직원들은 전에는 3구역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5구역으로 밀려났다. ‘출근 전쟁’이다. 이민자까지 가세하면 주거와 교통은 지옥이다. 브렉시트 엔진은 자유와 반(反)규제, 반EU에서 나왔지만 동력은 역시 이민 문제였다. 폴란드 이민은 단연 인기였다. 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한결같이 “폴리시!”였다. 영국의 개방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마크 카니다. 그는 캐나다 총리를 꿈꾸는 순수한 캐나다 사람이다. 그런 나라에 한국 언론들이 보도하듯이 ‘신자유주의에 지친 영국인들의 브렉시트’라고 말하면 그들이 웃지 않겠나.

(3) 금융

런던이 뉴욕조차 일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 언론의 게으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런던 금융시장은 이미 6년 전에 전체 자본거래량에서 미국을 넘어섰다. 장외 파생상품 거래는 영국의 세계 비중이 49%, 미국의 세계 비중은 22.8%에 불과해 격차는 두 배 이상이다. 외환거래량은 40.9% 대 18.9%로 역시 더블 스코어. 해상보험 순보험료는 영국이 미국의 5배였고, 헤지펀드와 증권거래에서만 미국이 아직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아직 파운드화를 쓰고 있는 런던이 세계 유로화 거래의 40%를 차지할 정도다. EU 가입 이후 EU에 대한 순선호도가 한 번도 플러스였던 적이 없는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투자은행인 아멘티스그룹 최고경영자(CEO) 나짐 샤이크는 파키스탄 출신이다.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사업은 런던에서 한다. 그는 “런던의 금융 경쟁력은 EU 탈퇴 이후에도 변치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상업은행이라면 몰라도 투자기관들은 런던만한 도시를 찾기 어렵다. 혼란스러운 몇 주가 지나면 바로 평온을 찾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런던의 경쟁력은 교육 시스템, 영어, 우호적 규제 기관, 최고 수준인 법률 지원, 언론까지 포함된다. 바로 ‘시티 오브 런던’의 인프라다. 뱅가드그룹의 한국인 대표 패트릭 한은 “나는 런던에 베팅한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금융감독청 간부 샤라 팔리 씨의 말이었다. “영국 금융감독의 목표는 혁신을 자극하고 경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금융감독의 목표가 혁신이라니! 그런 국가였다. 그러니 대륙의 독일, 프랑스와는 어울리기 어려웠다.

(4) 진로

진로는 결정된 것이 아직 없었다. 런던행 비행기에서 펼쳐 든 신문에는 미국의 키신저와 독일의 콜이 EU에 충고하는 칼럼이 각기 실렸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영국을 너무 세게 밀어붙이지 말며, 가능하면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주라는 충고였다. 키신저는 ‘영국을 탈옥수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짐짓 영국을 나무랐으나 결론은 콜과 다를 게 없었다. 사실 모두가 겁내는 것은 내년 유럽의 정치지형이었다. 브렉시트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라는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다. 영국은 EU의 틀 속에 가두어 놓기는 너무 큰 국가이고 혁신적이었다. 당초부터 같이 갈 수 없는 국가들의 어색한 동거생활이 청산되고 있었다.

정규재 주필 겸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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