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음대생 아르바이트

입력 2016-07-13 18:39  

이소영 < 솔오페라 단장 rosa0450@hanmail.net >


모처럼 한가한 주말이라 딸아이랑 시간을 보내려 했더니 바쁘단다. 뭐하느라 그렇게 바쁘냐고 물었더니 “엄마, 저 오늘 예식장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일이 생겨서 땜빵 해주러 가요”라고 한다. 신부 드레스를 잡아주는 건가 했더니 결혼식 축가 아르바이트란다. 축가라면 으레 신랑, 신부의 친구나 양가 가족의 지인 중 한 사람 또는 여럿이 불러주는 성스러운 축복송이라 생각했는데 예식장 아르바이트라니 의아했다. 자세히 물어보니 요즘은 결혼 당사자들이 예식장에 요청하면 웨딩이벤트 기획사에서 연주비를 받고 연주자를 보내준다고 한다. 사례금은 음대생일 경우 2만원 정도고 잘 받으면 3만원도 받는다고 한다.

음대 재학 시절 가끔 내게도 결혼식 축하연주 요청이 들어왔다. 대부분 친척이거나 친구의 지인, 아니면 같은 교회에 다니던 신자의 가족 등이었다. 돈을 번다는 개념보다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피아노 연주를 했다. 결혼식 후 봉투에 담긴 사례금을 받을 땐 왠지 손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학창 시절 간간이 만질 수 있는 제법 큰 돈이었다. 아직 학생인데도 예술가로 깍듯이 대접해주는 그들의 치사도 싫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아예 웨딩연주 전문업체들이 생겨나 음악도들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한다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축가 한 곡을 부르고 받는 사례가 2만~3만원이라니 예술의 가치는 거꾸로 떨어진 건가 하는 생각에 왠지 씁쓸했다. 왔다갔다 차비 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기다리면 몇 타임 할 수 있고 예식장 안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음대생들 사이에선 꽤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요즘 순수예술을 전공하는 학생이 줄어들면서 음대생들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내가 음대에 재학하던 시절에는 초등학생들이 피아노는 기본으로 배우고 창작동요 붐을 타고 웬만하면 노래도 배우는 분위기였다. 동네마다 피아노 교습소, 음악학원 간판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도 동요보다는 가요를 부르고 예체능 교육보다는 영어 학원을 선택한다. 그러니 음대생에겐 아르바이트 자리는 물론이고 졸업해도 딱히 일자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짠 하고 나타난 웨딩이벤트 기획사들에 감사를 해야 하는 건지 원망을 해야 하는 건지…. 한 시간씩 기다리기를 몇 번이나 하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결혼식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축가를 불러주고 있는 후배 음악도들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소영 < 솔오페라 단장 rosa0450@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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