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99%가 무슬림이지만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 보장
'국가의 수호신' 자처한 군부, '정교일치' 정부에 경계
에르도안 14년 장기집권에도 '경제 살린 대통령' 지지 많아
[ 박종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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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는 1960년 첫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이후 모두 여섯 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이어졌다. 10년에 한 번꼴이다. 이 가운데 네 번은 성공해 정부가 전복됐고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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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헌법 제13조2항이다. 종교는 종교일 뿐이라고 여기는 군부는 국가의 수장이 이슬람 교리를 정치에 과도하게 대입시킨다는 판단이 들 때마다 행동에 나섰다.
1960년 이슬람 물결이 정계에 광범위하게 퍼졌을 때, 1971년 극심한 좌우 분열의 원인이 이슬람 세력의 발호 때문이라고 평가했을 때, 1980년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간 충돌이 전국으로 확산했을 때 군부는 세속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쿠데타로 지도자를 바꿨다. 1997년에는 총을 들지 않고 이슬람 성향의 집권여당인 복지당을 헌법재판소 판결로 폐당하면서 ‘무혈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다.
헌법 제13조2항은 2010년 국민투표로 폐기됐다. 하지만 상당수 군인은 여전히 자신들이 헌법의 수호자로서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터키인 가운데 일부도 군부의 정치 개입을 옹호한다.
이번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도 마찬가지 논리를 내세웠다. 군부는 민영 NTV 방송국과 도안 통신사를 통해 “민주적 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헌법질서를 재건하겠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세력은 이슬람주의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강압적인 철권통치를 펼쳐 국가를 어려움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결국 쿠데타는 실패했다. 터키 국민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거리로 나가 쿠데타 세력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에르도안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사를 통폐합하고 여성의 권리를 부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일부 신문은 정부 ?탄압 탓에 비판적인 기사는 기자들이 쓰지 않고 외부 필자의 이름을 빌려 쓰는 형편이다.
‘술탄(이슬람 최고통치자)’이라고까지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경제 성적표’가 괜찮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가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른 총리로 취임하기 2년 전인 2001년 경제성장률은 -5.7%였다. 그런 성장률이 취임 첫해 5.2%로 급반등했고, 이듬해에는 9.3%로 껑충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다시 -4.8%로 떨어졌지만 2010년 9.1%를 기록한 이후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를 계기로 군인과 판사 등 반대 진영 6000여명을 체포하는 등 잔존 세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쿠데타 배후로 한때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였다가 정적으로 돌아선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하고 미국에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귈렌은 “이번 쿠데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오히려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쿠데타 자작극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쿠데타 후폭풍으로 또 다른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터키에 민주적 법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쿠데타를 계기로 터키 내 세속주의 세력이 크게 약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과 비슷한 쿠데타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알파고 시나시 터키 지한통신 기자는 “쿠데타에 참여한 세력이 70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쿠데타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부의 세력이 여전히 강 構?정부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아 사태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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