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문제 더 깊이 생각
응급전문의 애환 알리고 싶어
[ 이미아 기자 ] “하루에 100명 넘는 사람들이 응급실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누구든지 ‘가면’이 있어요. 그 가면 뒤에 삶이 있는지, 죽음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정말 두렵죠. 그런 순간들을 그저 잊고 지나가고 싶지 않아서 짧은 글을 써왔는데, 그게 어느새 모여 책이 됐네요.”
이달 초 응급실 현장의 순간들을 팩션(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재구성한 작품) 에세이 형식으로 담은 책 《만약은 없다》를 펴낸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씨(사진)는 지난 7일 서울 해방촌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남궁씨는 고려대 의대 졸업 후 고려대안암병원과 고려대구로병원, 고려대안산병원을 순환근무하며 인턴 및 레지던트를 마치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2014년 4월부터 충남 홍성 소방본부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 중이다. 페이스북에서 친구 약 5000명, 팔로어 약 7700명을 자랑하는 ‘페이스북 스타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해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꿈꾸기도 했다”며 “이과를 선택하게 돼 의대에 갔다”고 머쓱해했다. 당시만 해도 비인기학과인 응급의학과를 택한 이유는 “사람이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몸은 힘들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환자를 살려내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이 무엇보다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제가 입학할 때만 해도 응급의학과 지원자는 정원 중 절반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 정원 미달이 없어졌습니다. 제 글을 통해 ‘이런 직업도 있다’는 걸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습니다.”
《만약은 없다》란 제목은 그의 동명 단편 에세이에서 따온 것이다. 남궁씨는 “내 직업엔 ‘만약’이란 단어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며 “아무리 돌이켜본들 떠난 생명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에 삶과 죽음에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맨몸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는 의료진, 응급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환자 등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최대한 냉철하게 쓰고 싶은데 생각보다 그게 잘 안 되네요.”
남궁씨는 책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의료기구로 메스를 꼽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문체는 메스를 들고 환부를 도려내듯 강렬하다. 다만 환자와 보호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논픽션 대신 팩션의 형태를 택했다. “제 글을 보고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그 독자가 의대생이면 ‘전공을 택할 무렵 그 마음 변치 않았다면 응급의학과에 대해 적나라하게 말해주겠다’고 답을 해주죠. 현실과는 차이가 있으니까 ?”
그는 “‘자연인으로서의 남궁인’이 밝고 유하다면, ‘의사로서의 남궁인’은 단호한 성격”이라며 “될 수 있는 한 둘을 구분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주변 친구들은 제 글을 보고 ‘네가 쓴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 이젠 좀 다른 필치의 에세이도 쓰고 싶지만 기록이란 본질은 잊지 않을 겁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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