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장관은 2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니아 주(州) 필라델피아의 농구경기장 '웰스파고 센터'에서 진행된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서 경선 결과를 반영한 주별 공개투표인 '롤 콜' 절차를 거쳐 대선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미국이 1776년 7월4일 독립을 선포한 이후 지금까지 여성 대통령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228년간 44대에 걸쳐 모두 남성 대통령이었다. 미국 양대 주요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여성이 후보로 지명된 적도 없다.
여성이 대권 후보로 나선 것은 빅토리아 우드헐이 1872년 평등권당의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것이 처음이다. 이후 민주·공화의 양당에서 여성의 대권 도전이 잇따랐으나 지금까지 아무도 경선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는 강한 신념과 열정을 보유한 미국 여성 정치인의 대명사로 불린다. 변호사로 출발해 퍼스트레이디(대통령 부인),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거쳐 미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선후보 고지까지 올랐다.
클린턴 후보는 1947년 10월26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16세 때 고교생으로서 '신보수주의 운동'의 기수였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베리 골드워터의 선거캠프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민권운동 열풍과 1968년의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민주당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69년 진학한 예일대 로스쿨에서 지금의 남편 빌을 만났다. 결혼 4년4개월 만인 1980년 2월 외동딸 딸 첼시를 낳았다.
1975년 10월 빌과 결혼한 이후엔 변호사로 명성을 쌓으며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1988∼1991년 영향력 있는 100대 변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이 대선과 재선에서 승리해 1993년부터 2001년까지 8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클린턴 후보는 '일하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국가보건개혁 테스크포스 책임자를 맡아 '힐러리케어'로 불리는 보건개혁을 추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라는 민주당의 권유를 받아들이며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2001년 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8년간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다.
2008년 첫 대권 도전에 나섰으나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4년간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대선 주자로서의 내공을 쌓았고 올해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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